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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라웨어, 기업 유치 통해 주 경제 일궈

  • 김용일 기자
  • 2월 28일
  • 3분 분량

델라웨어는 로드아일랜드보다 조금 더 큰, 미국에서 두 번째로 작은 주이다. 17세기 중반부터 유럽 각국의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 확보 경쟁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델라웨어 지역에 가장 먼저 거점을 정한 것은 스웨덴이었다. 이후 지배권이 네덜란드로 넘어갔다가 1673년에 최종적으로 영국 차지가 됐다. 처음에는 펜실베이니아에 속해 있었으나 독립전쟁이 일어나면서 독립 식민지로 바뀌었고, 이후 비로소 13개 건국 식민지의 일원이 됐다.


주의 규모나 영향력에 있어 제일 작은 축에 속했기에 델라웨어의 독립전쟁 기여도는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대륙군에 민병대를 파병했지만, 주목할 만한 전투나 전공을 일궈내지는 못했다. 델라웨어주는 ‘첫 번째 주(First State)’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독립전쟁에 참여했던 13개 식민지 가운데 가장 먼저 미합중국 헌법을 승인해 미국의 ‘첫 번째 주’가 된 것이다.


델라웨어는 남부 주들과 마찬가지로 노예제에 찬성하는 주였다. 미국 동북부의 남단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남부와 연대 의식이 강했다. 주의 땅은 넓지 않았지만 평균 고도 18m의 평야 지대이기 때문에 남부식의 규모가 큰 농장들이 적지 않았다.


당연히 농장 인력 운용이라는 측면에서 노예제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선언으로 남과 북으로 갈라질 때 북군으로 가담했다. 델라웨어에는 1865년 남북전쟁이 종식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부에 노예가 남아있을 정도로 남부 지향적인 성향을 보였다.


델라웨어는 대서양 연안에 길쭉하게 자리잡은 곳이다. 길이 161km 정도에 폭이 가장 넓다고 해야 50km 남짓일 만큼 좁다. 차로 달리면 북에서 남쪽 끝까지 2시간 안팎이다.

주의 땅이 온통 평평한 곳이기에 농장 지대가 전체의 40%가량 되지만, 작물의 생산량이나 품종 면에서 각별하게 주목받을 만한 것은 없다. 옥수수, 콩, 건초와 시금치, 토마토 등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농산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델라웨어는 바이든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다. 바이든은 여기서 상원의원, 부통령을 거쳐 현직 대통령 트럼프를 물리치고 46대 대통령을 지냈다. 일찍이 북군에 가담했듯이 델라웨어의 정치적 성향은 민주당 색채가 강해 1988년 이래 대선에서 항상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델라웨어는 땅도 좁고 인구도 100만 명이 조금 넘는다. 델라웨어강 강변을 중심으로 화학 산업, 조선업 등이 있지만 주의 경제력을 책임질 만한 주력 산업은 내세울 만한 게 없는 편이다. 델라웨어는 이렇게 보잘것없는 자연조건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길을 찾았다. 농작물 대신 기업을 키우는 ‘기업 인큐베이터’로 변신한 것이다.


델라웨어는 사람보다 기업이 더 많은 곳이다. 2023년 현재 델라웨어에 본사를 둔 미국 내 기업체는 250만 개가 넘는다. 미국 전체 상장기업의 93%가 델라웨어에 법인 등록을 했다. 특히 포춘지 선정 500대 대기업 가운데 델라웨어주에 법인 등기상, 즉 서류상 본사를 둔 곳이 68%가 넘는다. 유명한 IT 기업들, 메이저 신용카드회사, 대규모 배송업체들도 마찬가지이다.


델라웨어주 윌밍턴시 노스오렌지스트리트 1209번지에는 자그마한 2층 건물이 있다. 갈색 벽돌의 이 평범한 건물에는 무려 30만 개가 넘는 회사들이 같은 주소에다 등기를 해두고 있다. 구글, 애플, 코카콜라, 월마트, JP모건 체이스 등 하나 같이 굴지의 대기업들이 즐비하다.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들도 많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도 이 주소를 공유하고 있다. 트럼프는 2016년 델라웨어주 선거 유세에서 자신의 기업 378개가 델라웨어에 주소지를 두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세계적인 기업이나 유명한 개인이 델라웨어에 이른바 ‘페이퍼컴퍼니’인 등기상 본사를 두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이다.


델라웨어는 세일즈 택스(Sales Tax, 판매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또 델라웨어 내에서 영업하지 않는 한 영업이익에 대해서도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회사가 미국 내 다른 곳에서 영업하고 벌어들인 돈을 델라웨어 본사로 보낼 경우, 막대한 영업이익에 대한 세금을 물지 않아도 되는 식이다.

페이퍼컴퍼니 설립과 운영을 주 차원에서 권장하는 만큼 관련된 행정 서비스도 최고다. 1시간이면 회사를 설립할 수 있고, 이를 처리해 주는 법원 사무실은 심야까지 운영된다. 게다가 익명의 법인 설립이 허용돼 누가 전주(錢主)인지 전혀 드러날 위험도 없다.


힐러리나 바이든 같은 유명 정치인들도 막대한 강연 수입을 델라웨어 법인을 통해 세금 한 푼 안 내고 고스란히 챙길 수 있다. 기업에게는 절세, 재력가에게는 돈세탁을 가능하게 해주는, 최고의 조세 도피처이자 자산 은닉-피난처인 것이다. 미국 당국의 추정에 따르면 한해에 최소 5,000억 달러 이상의 불법 자금이 미국 내에서 돈세탁으로 처리된다는 분석도 있다. 델라웨어의 별칭을 ‘델라웨어 구멍(Delaware Loophole)’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델라웨어는 기업들을 끌어들여 큰 재미를 보고 있다. 델라웨어주 예산 수입의 4분의 1가량이 기업 설립과 운영에 따른 각종 수수료에서 나온다. 델라웨어의 기업 인큐베이터 정책은 네바다의 라스베이거스,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 이상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고 있다.


1951년에 건설된 델라웨어브릿지는 델라웨어와 뉴저지를 잇는 거대한 교량이다. 쌍둥이 다리인 델라웨어브릿지는 델라웨어의 화학, 조선 산업을 대변하는 공업화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미국 사회에서는 미국 내에서 가장 힘센 주가 캘리포니아도 텍사스도 뉴욕도 아닌, 델라웨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미국 항모 대여섯 척이 몰려와도 델라웨어브릿지를 결코 파괴시키지 못한다는 얘기도 있다.

미국의 대기업들, 최고의 재력가와 기득권 정치가들이 델라웨어라는 최적의 조세-자금 회피처를 굳건히 수호할 것이기에, 델라웨어는 미국이 존재하는 한 만수무강할 것이라고 빗대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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