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올해 11월 버지니아와 뉴저지는 주의원, 카운티·시의 장, 교육위원 등을 뽑는 지방 선거를 시행한다.
이런 가운데 카운티·시별로 있는 각 당의 지역위원회는 선거에 앞서 열리는 당내 경선을 준비하느라 한창 정신이 없다.
지역위원회는 옛날 한국의 지구당과 같은 개념으로, 정당들이 주민들과 밀착해서 소통하기 위해 가동하는 조직이다.
정치에 참여하고 싶거나 목소리를 내고 싶은 사람이 찾아가기 꼭 알맞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지역위원회에 대해 정보가 부족하고 언어의 장벽이 있어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한인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위원회에 민족별로 분과가 있는 데다 영어에 능통하지 않아도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많아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도전하기만 한다면 미국 주류 사회에 한인의 영향력을 키울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려면 우선 지역위원회가 어떤 곳인지 알 필요가 있다.
정치와 대중을 잇는 가교이자 풀뿌리 민주주의의 디딤돌 역할을 하는 지역위원회를 샅샅이 살펴봤다.
지역위원회가 하는 일은
지역위원회는 선거철에 가장 활발하게 일하는 조직이다.
페어팩스 카운티 민주당 위원회(FCDC)의 도미닉 톰슨 사무총장은 “언제나 유권자와 접촉하고 소통하는 게 우리의 지상 목표”라며 “사람들에게 유권자 등록을 독려하고 투표소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고 밝혔다.
프린스 윌리엄 카운티 공화당 위원회(PWCGOP)의 데니 도허티 위원장은 “공직 후보자 선출 방법을 정하는 게 지역위원회의 주 업무”라며 “투표소에서 일할 선거사무원을 지정하고, 후보가 정해지면 유권자들을 찾아가 홍보하는 일도 맡는다”고 설명했다.
홍보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진다.
온오프라인으로 광고를 내거나, 자당 후보 및 자당이 지원하는 무소속 후보의 명단(sample ballot)을 투표소 인근에서 혹은 우편으로 배포하는 게 대표적이다.
주민들에게 전화를 돌리거나, 후보나 정당 관계자가 직접 주택가를 돌면서 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유권자와 짤막한 대화를 나누는 호별방문(canvassing)도 빠질 수 없다.
톰슨 사무총장은 “지금도 우리 유권자 등록 위원들이 카운티 이곳저곳, 특히 조지 메이슨 대학교 캠퍼스에서 사람들에게 유권자 등록(voter registration)을 독려하고 있다”며 “아직 어느 후보에게 투표하라고 말할 순 없다 보니 지금은 그것이 주 업무”라고 말했다.
이처럼 지역위원회는 자원봉사자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위원회 내에 급여를 받는 직원은 거의 없으며, 위원장도 무보수 명예직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지역위원회는 언제나 신규 당원과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
도허티 위원장은 “최근에 프린스 윌리엄 카운티로 이사 왔는데 유권자 등록을 안 했거나 투표소 위치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11월 선거에서 한 명의 유권자가 평균 7명 이상의 후보에 투표해야 해서 후보들을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자원봉사자들이 자기 동네, 공동체에 우리 당의 메시지를 전파해 주면 그보다 값진 일이 없다”고 덧붙였다.
당내 경선에서의 역할
경선 관리는 의외로 지역위원회가 신경 쓸 부분이 적다.
대부분 후보 선출은 일반 당원이나 시민이 참여하는 개방형 경선인 프라이머리 (primary) 방식으로 치러지는데, 이 경우 모든 절차를 주 정부가 관리한다.
지역위원회가 예비후보 명단을 확정해 넘기면 주 정부는 경선일을 정해 일반 선거와 똑같이 각 지역에 투표소를 설치하고 투개표를 진행한다.
도허티 위원장은 “우리가 하는 역할은 후보들이 입후보 신청서와 공탁금을 시간 안에 냈는지 확인하는 것밖에 없고, 그다음은 주 정부 소관”이라며 “인터뷰 직전에도 후보들이 제출한 유권자 추천장에 오류가 없는지 검토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다만 11월 본 선거 때 우리 당이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후보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며 “경선에서 이긴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본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소규모 당원대회인 코커스(caucus)나 컨벤션 (convention) 등의 방식으로 치러지는 경선은 이야기가 다르다.
지역위원회가 행사를 완전히 진행해야 해서 많은 준비와 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톰슨 사무총장은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자원봉사자가 많을수록 좋다”며 “투표하겠다고 신청하는 사람들이 당규상 선거권이 있는지 심사하는 데이터 팀과 개표가 실수 없이 이뤄지도록 감독하는 투표소 사무원, 두 가지 직책이 가장 많으며 이외에도 여러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24세인 톰슨은 자신도 6년 전인 18세 때 선거 사무원 봉사를 했다가 조 도넬리 당시 연방 상원의원의 재선 캠프에 스카우트되며 정치에 발을 들였다.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프라이머리와 달리 코커스는 대체로 당비를 내는 당원만 참여할 수 있다.
따라서 코커스에 참여하려면 미리 거주 지역의 지역위원회 웹사이트에 접속해 입당 원서를 내는 게 좋다.
다만 FCDC는 올해부터 이런 제한을 철폐했다.
이어 “당비 납부 당원만 참여하면 전체 민주당 지지자들의 민심과 괴리가 있다고 판단해 올해는 누구나 투표할 수 있게 바꿨다”며 “FCDC 웹사이트에서 5월 5일까지 투표 참여를 신청하라”고 권했다.
유권자와 소통
버지니아는 현재 정치적으로 격동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주의회 지역구가 전면 재획정됐고, 2021년 글렌 영킨 주지사가 일부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 높은 득표를 기록해 정치 지형에도 변화가 예고됐다.
하지만 작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 지지세가 견고한 모습을 보여 양당 모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도허티 위원장은 “과거에는 주의회가 지역구를 획정했으나 의원들은 매번 자기들이 재선되는 데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을 내렸다”며 “이번에는 주 대법원에 공이 넘어갔고, 대법원은 자연적인 경계선들을 따라서 지역구를 재획정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프린스 윌리엄 카운티는 이전까지 6개 주 상원 선거구에 조금씩 포함됐는데 올해부터 3개 선거구에 큼직큼직하게 나뉘어 들어갔다”며 “주민 투표를 통해 제도를 바꿔준 현명한 유권자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위원장은 또한 “선거 결과는 정책에 달려있다고 본다”며 “올해 우리 당에서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의 면면이 훌륭해서 큰 변화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톰슨 사무총장은 “패어팩스가 한 번 민주당 텃밭이었으니 영원히 그럴 것이라는 안일한 판단을 내리기 쉽다”며 “사실은 민주당이 펼쳐온 정책과 버지니아에 가져온 정치적 변화 덕분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계속해서 성심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며 “영어를 못하거나 서툴게 하는 유권자에게도 다가갈 수 있는 시스템적 기반을 마련하는 등 유권자와 소통을 강화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역위원회들은 영어 외 언어를 능통하게 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를 간절히 구하고 있다.
톰슨 사무총장은 “FCDC 안에 아시아계 미국인 지부, 흑인 지부, 라티노 지부가 있다”며 “자기 공동체의 발언권을 키우는 데 큰 성과를 거둔 자원봉사자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언어의 장벽 때문에 봉사를 못하는 일이 없도록 돕고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로 출발해 꾸준히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도허티 위원장은 “이 일을 하다가 정계로 진출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며 “예를 들어 PWCGOP에서 활동하던 리치 앤더슨 전 주 하원의원이 현재 공화당 버지니아 지부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나처럼 후보들을 돕는 일에서 더 큰 가치를 찾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톰슨 사무총장은 “올해 당내 경선에 출마한 예비후보 중에 FCDC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많다”며 “정계 진출에 관심이 있다면 특별히 입당을 강력히 추천한다”고 말했다.
결론
지역위원회는 당내 경선을 관리하고 당원, 유권자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땅이 넓고 인구가 많은 미국의 특성상 각 정당은 지역위원회에 크게 기댈 수밖에 없다.
한인들도 지역위원회에 들어가 목소리를 내고, 제도권 정치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당원으로 가입해 정기적으로 활동할 수도 있고, 일시적인 자원봉사를 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현실 정치가 돌아가는 방법을 눈으로 보는 것도 중요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정당 내에서 꾸준히 실력을 키워 본인이 선거에 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주류 사회에 계속해서 발을 들이밀면 얼마든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대부분 지역위원회에 소수민족들을 위한 지부가 따로 있어 언어의 장벽 걱정을 덜 수 있다는 사실은 덤이다.
아직 정치에 참여하는 게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우선 투표부터 시작하면 된다.
뉴저지와 버지니아는 오는 11월 7일 지방 선거가 있으며, 과거에 유권자 등록을 한 적이 없다면 10월 17일까지 이를 마쳐야 투표할 수 있다.
본 선거에 앞서 당내 경선도 진행된다.
뉴저지는 6월 6일 정당별 프라이머리 경선이 열리며, 앞서 2일부터 4일까지 사전투표를 진행한다.
버지니아는 6월 20일 경선이 열리며, 사전투표는 5월 5일에서 30일까지다.
뉴저지는 5월 16일까지, 버지니아는 5월 30일까지 유권자로 등록해야 경선에 투표할 수 있다.
다만 버지니아는 당내 경선과 본 선거 모두 기한을 놓쳤어도 선거 당일 투표소에서 현장 등록이 가능하다.
미국 정치권에서 한인 공동체의 영향력이 나날이 커지는 가운데 올해도 한인 유권자들의 저력이 나타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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