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적 한반도의 2배, 인구 4,000만 명, GDP 2022년 기준 3조 6,000억 달러로 세계 5위. 미국 50개 주 가운데 ‘대장주(大將州)’라 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주의 위용이다. 캘리포니아주의 GDP는 영국이나 프랑스를 능가하며, 아프리카 54개국을 모두 합친 것 보다 30%가량 더 많다. 캘리포니아가 미국서 떨어져 나가 독립한다면 당연직으로 G7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을 대표하는 간판주이자 세계 정상급의 경제 역량을 지닌 캘리포니아이지만, 상전벽해라 할 만한 번영의 역사는 200년이 채 안 된다. 1840년대 무렵, 광활한 캘리포니아 지역은 정착민 수가 수천 명대에 불과한, 사실상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던 황무지였다.
캘리포니아 금 노다지
대서양 연안 지역에서 출범한 미국의 영토가 캘리포니아 획득을 계기로 태평양까지 이르게 되면서 미국은 크게 출렁거렸다. ‘기회의 땅’ 서부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 외에도 서부 개척 열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바로 캘리포니아에서 사금의 발견이었다. 이른바 ‘노다지’ 사태다.
1848년 1월 24일, 샌프란시스코 인근 아메리카강 강변의 제재소 공사장. 목수로 일하던 제임스 마셜(James Marshall)은 무언가 반짝이는 광물 부스러기가 눈에 띄어 집어 들었다. 그는 이를 은밀히 제재소 주인에게 가져가 함께 성분 검사를 시도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순도 96%의 최고급 금으로 판명됐다.
전설 같은 캘리포니아의 금 노다지 스토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금 발견 사실을 비밀로 숨기려 했지만, 소문은 즉시 주위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근처 지역에서는 물론 멀리 동부, 중부에서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심지어는 아시아의 중국인들도 노다지 찾기 행렬에 가세했다.
노다지 현장에 먼저 도착했던 사람들은 꽤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하루에 수천 달러씩을 챙겼다는 얘기들이 곳곳에서 떠돌았다. 미국 지질조사국 조사에 의하면 골드러시 첫 5년 사이에 채취된 금은 무려 370t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6년 11월 기준 가치로 70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이다.
샌프란시스코는 1848년 무렵 인구 1,000여 명의 작은 마을에서 두 해 사이에 3만 명에 육박하는 도시로 탈바꿈했다. LA 역시 비슷한 시점부터 급성장 가도를 달렸다. 금맥 발견 이후 1855년까지 최소한 30만 명 이상이 금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이주한 사람들은 ‘포티나이너스(49ners)’로 불렸다. 금이 발견된 해는 1848년이지만 동부에서 서부 캘리포니아까지 오는 데 거의 1년이 걸렸기에, 대거 이주한 시점은 1949년이었기 때문이다. 이 ‘49ners’는 슈퍼볼을 다섯 차례나 거머쥔 샌프란시스코의 명문 미식축구팀 이름으로 남았다.
캘리포니아는 땅덩이 자체가 크기도 하지만 다양한 지역과 기후가 혼재하는 곳이다. 서남부 해안은 좁은 평야, 그 뒤로 캐스케이드산맥이 뻗어 있고, 내륙은 센트럴밸리로 불리는 저지대 분지에 이어, 동쪽으로는 험준한 시에라네바다산맥이 가로막고 있다.
이런 자연환경에 따라 기후 또한 각양각색이다. 서부 해안평야 지대는 지중해성 해양성기후로 위도에 비해 온화하고 강수량이 많지만, 센트럴밸리는 전형적인 대륙성기후 및 사막기후를 볼 수 있고, 시에라네바다 산간 지방은 폭설에 혹한이 덮치는 등 지구상의 주요 기후들을 다 포함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고도 차이도 엄청나 시에라네바다산맥에는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대륙 최고봉인 휘트니산(4,421m)이 있고, 지척이나 다름없는 136km 떨어진 곳에는 미대륙의 최저점인 해발 -86m의 ‘데스밸리’가 있다.
이처럼 거칠고 척박해 보이지만 캘리포니아 일대는 인간의 손을 통해 천혜의 땅으로 다시 태어났다. 홍수로 인해 수시로 범람하던 콜로라도강 유역은 1935년에 완공된 후버댐 등을 통해 최대 규모의 식수원으로 바뀌는 한편 막대한 양의 전력까지 생산해 냈다.
중부의 광활한 밸리 지역은 대규모 관개시설을 통해 옥토로 바뀌었다. 캘리포니아에서 농작물들이 생산되는 곳을 보면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오렌지 농장의 경우 차로 한참을 달려도 오렌지 수림(樹林)의 끝이 보이지 않는 곳이 많다. 밀밭이나 각종 야채밭도 평원과 구릉으로 한없이 이어져, 밭이라기보다는 아예 ‘밀 바다’, ‘야채 바다’라고 불러야 할 정도이다.
따뜻한 기후 속에서 잘 정비된 관개시설을 통해 상추, 토마토, 당근, 양파, 시금치, 브로콜리 등 각종 야채에다 포도, 딸기, 복숭아, 레몬, 아보카도 등 온갖 과일들이 무지막지한 규모로 생산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자체 밀 생산량만으로도 미국 인구의 3분의 1을 먹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생산량은 엄청나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에 주어진 가장 큰 자연의 선물은 에너지 자원이다. 캘리포니아의 최대 도시 LA의 경우 외곽은 물론 주택단지 근처에서도 거대한 사마귀 모양의 원유 생산 펌프가 가동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뭄에 바싹 마른 잡풀, 잿빛의 관목 덤불투성이 언덕, 구릉 지대 곳곳에서 ‘검은 황금’ 석유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생산되고 있다. 석유 외에도 천연가스, 그리고 근래 들어 셰일 등도 지천으로 묻혀 있어 부러움을 더하게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이 같은 천연자원 외에 실리콘밸리에 자리한 IT산업의 허브, 항공 산업의 지배자 보잉,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본산 할리우드, 미국의 대외교역 물동량의 태반을 커버하는 해운 유통의 중심지 롱비치항 등 막강하면서도 다양한 산업 포트폴리오를 구비하리면서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가장 중요한 중심축이 되고 있다. 캘리포니아가 일개 주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5위권의 GDP를 창출해 낼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요소들이 두루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는 1960년대 초반까지 인구수에 있어 뉴욕주 다음이었다. 그러나 이후 뉴욕을 넘어 50개 주 가운데 인구수 최대 주로 등극했고, 지금은 2위인 텍사스보다도 1,300여만 명이 더 많은 부동의 1위이다. 이 같은 인구 파워는 캘리포니아의 정치, 경제적 위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인구수를 기준으로 배정된 대통령 선거인단 수가 55명으로 역시 최대이고, 연방 하원의원 수도 캘리포니아 출신이 전체의 8분의 1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캘리포니아를 뺀 미국은 ‘앙꼬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다는 평을 들을 정도이다.
동부의 식민지, 그리고 독립 초기 주들이 영국을 주축으로 하는 유럽계 이주자들이 주류가 된 반면, 캘리포니아는 스페인, 멕시코 혈통의 라티노들이 다수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 주들 가운데 드물게 백인 비율이 34%로 36%대인 히스패닉계에 뒤지는 소수계로 밀려나 있다.
태평양에 연해 지리적으로 아시아와 가까운 탓에 아시안들의 비율도 미국 평균보다 3배 이상 높은 16%대를 기록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만큼은 이른바 소수계들이 인종차별에서 자유롭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이다. 미국 내에 4백여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인들도 거의 절반가량이 이 캘리포니아와 주변 지역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런 인종 지형을 반영하듯 캘리포니아의 정치 색깔은 말 그대로 ‘올 블루’이다. 철저하게 민주당이 지배하는 ‘블루 스테이트’의 아성이다. 1988년 대선 이후 캘리포니아는 늘 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득표율도 민주당 후보가 더블 스코어를 차지할 만큼 몰표로 밀어주었다.
주지사, 주 의회 등까지 민주당 일색이다 보니 미국 내 정치적 위상이 덩치만큼은 못하다는 역설도 생겨났다. 백악관 주인을 결정하는 것이 최대 선거인단을 가진 골리앗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일곱 난쟁이’ 같은 7개 ‘스윙 스테이트’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캘리포니아의 존재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불과 250여 년 사이에 ‘맨땅’에서 출발해 세계 유일의 초강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건국 신화는 캘리포니아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어느 지역 보다 늦게 문명의 발길이 닿았던, 그리고 어느 곳보다 더 척박하고 거친 곳이었던 캘리포니아는 움튼 지 150여 년 만에 미국 최고, 최대의 대장주이자 미국 50개 주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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