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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사우스(Deep South)'의 원조 아칸소

김용일 기자

미국은 50개주로 구성된 연방국가다.

미국 각 주는 크기와 규모, 경제력, 인구 등에 있어 웬만한 국가를 능가하는 곳들이 많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을 구성하고 있는 50개주의 면면 들을 주별로 소개해 본다.


미국의 남부로 분류되는 아칸소는 이른바 ‘딥 사우스’의 색깔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주로 꼽힌다. 노예제나 인종차별 문제 등에 있어 ‘꼴통 남부’의 성향이 짙다는 의미이다.

아칸소 역시 1803년에 미국의 루이지애나 매입을 통해 미국 영토가 됐다. 이후 1836년 6월 15일, 25번째로 연방에 가입해 합중국의 정식 멤버로 자리잡았다.


미시시피강 하류의 넓은 저지대 평원과 습지를 안고 있는 아칸소에는 전형적인 남부 플랜테이션 농장들이 많았다. 따라서 흑인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면화, 담배 농장에 소속된 흑인 노예들의 규모가 상당했다. 1860년 무렵 인구가 백인 43만여 명에 흑인 노예 11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1861년 4월에 남북전쟁이 터지자, 아칸소는 즉각 남부 측에 가세했다. 1863년 북군이 주도인 ‘리틀록’을 장악하자, 자신들의 수도를 남서부 지역의 워싱턴으로 옮겨 끝까지 저항했다.


전쟁이 끝난 뒤 남부 맹방에 가담했던 다른 남부 주들이 속속 미연방에 재가입하며 ‘통합’에 응했으나, 아칸소에서는 남군으로 참전했던 베테랑(참전용사)들을 중심으로 이를 거부하고 나섰다.

연방정부는 아칸소에 일종의 연방군 군사정권을 세워 10년 가까이 통제했다. 아칸소가 남부의 ‘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저항과 반항을 멈추지 않는 데 따르는 조치였다.


아칸소의 ‘뒤끝’은 이후에도 길게 남았다. 백인들 간에도 연방파와 노예제 옹호파 간에 폭력 사태가 빚어졌고, 특히 백인들로 구성된 ‘쿠 클럭스 클랜(KKK)’ 같은 백인우월주의 조직들은 노골적으로 흑인에 대한 폭력과 린치를 자행했다. 아칸소주 해리슨(Harrison)에는 지금도 KKK 본부가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흑인 차별 행태는 1960년대 후반까지도 공공연하게 이어졌다. 1957년 연방법원이 리틀록에 있는 센트럴 고교에 인종차별을 금지하라는 판결을 내렸으나, 당시 오벌 포버스 주지사는 주 방위군을 동원해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연방군을 파견해 주 방위군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하고 법원의 명령을 집행함으로써 사태를 수습했다. 아칸소의 공공시설과 학교 등에 만연했던 인종차별 장벽이 법적으로나마 정리된 것은 1970년이었다.

아칸소는 미국에서 드물게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고, 또 쌀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한국의 남부 지방과 비슷한 기후에 미시시피강 유역의 저습 지대 등과 같은 환경이 벼 생육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화나 콩, 옥수수 등의 생산량도 적지 않다. 또 삼림자원이 풍부해 목재 생산량도 풍부하다.


19세기 후반에 철도가 놓이고, 특히 1921년 엘도라도 인근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아칸소의 개발과 성장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아칸소 역시 여느 주들과 마찬가지로 풍부한 천연자원과 다양한 농작물, 육우, 양계, 식품 가공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양호한 산업기반을 갖고 있다. 미국은 물론 세계 최대의 유통기업인 월마트의 본사가 아칸소에 있으며, 역시 미국 최대 육가공업체인 타이슨 푸드도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중서부 지역의 주들이 대체로 넓은 평원 지대여서 볼거리 관광자원이나 유적지 등이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런데 아칸소의 북부 지역은 산세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경관이, 또 중부 지역은 ‘핫스프링스(Hot Springs)’라는 미국 최대 규모의 유명 온천 지역이 있어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아칸소는 전형적인 남부 주가 그러하듯, 정치적으로는 확실한 공화당 지지 지역이다. 1976년 카터 이후 이곳 주지사 출신인 클린턴만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나머지 선거에서는 공화 후보가 절대 우세를 견지했다.

특히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후보는 아칸소가 남편이자 전직 대통령 클린턴의 텃밭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에 27% 포인트라는 큰 격차로 완패를 당했다. 이곳의 공화당 텃세가 간단치 않음을 입증하는 증거로 종종 인용되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아칸소 출신 명사는 클린턴 전 대통령 외에 한국전쟁을 이끈 더글라스 맥아더 사령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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