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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최 기자

러시아서 헐값 구입.. 천혜의 보고 알래스카




세계 초1류 강국으로 평가받고 있는 미국은 50개주로 구성된 연방국가다.

50개주는 그 규모나 경제력 등에 있어 일반 독립국가 이상의 역량을 갖춘 곳이 많다. 미국은 사실상 50개 나라의 연합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서 살고 있지만 미국내 50개주를 다 둘러보기는 쉽지 않다.

50개의 나라 미국, 그 한곳 한곳을 차례로 소개해 본다. <1> 알래스카



1868년 3월30일, 토요일 새벽 3시 넘어간 시각. 워싱턴 DC 라파예트 광장에 있는 슈어드 미국무장관 저택의 서재는 터질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찼다.

책상을 두고 마주한 두사람은 슈어드 장관과 스퇴클 제정 러시아 대사.

이들은 여러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에 차례로 서명을 해나갔다. 이윽고 새벽 4시 정각, 양측은 서명이 완료된 문서들을 주고 받았다.

알래스카가 미국에 넘어 오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전날 저녁 스퇴클 대사는 미국무장관측에 메시지를 넣었다. 토요일이지만 내일 시간을 정해 만나자는 연락이었다.

슈어드 장관의 답은 “차라리 오늘 밤이 어떠냐”는 역제안이었다. 대사는 이날 러시아 황제로 부터 알래스카 할양에 관한 승인 통보를 받은 터 였다. 오랫동안 밀고 당겨 온 중대사안이었다. 대사는 서둘러 마무리를 하고싶었다.

두사람은 가격 부터 종결을 졌다. 광대한 땅 알래스카, 그러나 동토의 얼음 땅이었기에 러시아측은 ‘세게’ 받을 생각을 못했다.

600에서 650만달러. 대사가 본국과 상의해 정해 놓은 마지노선이었다.


미국측 역시 600만달러 안팎을 협상안으로 제시해왔지만 장관은 내심 그 이상도 기꺼이 감당할 용의가 있었다. 그래서 최종 마무리 된 액수가 720만달러.

알래스카의 면적은 172만3,337 ㎢, 텍사스의 두배 정도 크기다. 가격은 1㎢당 4달러 17센트에 판 것이 된다.

서울 여의도의 면적이 2.9㎢, 제주도가 1,842㎢이다. 이를 대입해 보면 여의도를12달러 71센트, 제주도를 7,681달러에 사들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화폐가치의 변화를 감안하면150년전 720만달러는2017년에1억1천2백만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2024년의 경우 넉넉 잡아 1억5천만달로 잡는다고 할 때 여의도를 대략 230달러, 제주도를 15만4천달러 정도에 구입한 것이 된다.


미국은 알래스카를 거저 줏은 것과 진배 없는 것이다.

러시아가 지금은 금싸라기가 된 알래스카를 미국에 헐값으로 안긴 데는 사정이 있었다. 1860년대를 전후한 당시, 유럽과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등 곳곳은 한참 식민지 ‘땅 따먹기’전쟁이 한창이었던 시절이었다.

미국은 멕시코를 거세가 밀어붙여 캘리포니아, 텍사스등을 거머쥐었다. 영국은 캐나다를 속령으로 하면서 북아메리카에서는 역시 러시아령으로 돼 있던 알래스카를 넘보고 있었다.

러시아 역시 유라시아의 크림 반도를 두고 터어키, 영국, 프랑스 등과 맞붙는 이른 바 ‘크림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유럽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를 거세게 막아섰다.

크림 전쟁은 러시아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겼다.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 외에 재정난이 러시아 황제를 압박했다.

제국주의 전쟁 와중에서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 차지했던 광대한 영토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던 러시아에게 있어 알래스카는 일종의 ‘계륵’이었다. 버리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지키자니 버거웠다.


러시아는 영국 외에도 신생 미국을 부담스러워 했다. 멕시코를 밀어붙이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미국이 필연코 알래스카를 넘볼 것으로 짐작했다. 과 캐나다를 차지하고 있던 영국도 역시 만만치 않은 존재였다.

러시아는 그래서 내부적으로 알래스카 포기도 감안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황제의 동생과 스퇴클 대사였다.

이들은 그냥 놓아버리느니 적절한 값을 받고 팔아치우자는 안을 냈다. 주저하던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2세도 마침내 동의했다.


러시아는 그래서 은밀히 미국과 영국 등에 오퍼를 내봤다. 알래스카를 팔 용의가 있다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영국 총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영국 역시 곳곳에 벌려 놓은 전쟁, 전투에 휘둘려 새 땅을 사들일 여력과 관심이 없었다.

미국도 입장은 비슷했다. 한참 남북전쟁을 끝내고 다시금 멕시코와 격렬하게 붙고 있는 상황이라 황량한 북방의 얼음 땅에 별 매력을 못느꼈다.


미국과 영국에 퇴짜를 맞자 유럽 몇나라 까지 선을 대 보던 러시아는 다시 한번 미국쪽으로 집중을 했다.

그 때 러시아가 찍은 인물이 슈어드국무장관이었다. 슈어드 장관은 뉴욕주지사와 연방상원의원을 역임했다.

이후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링컨에 패했지만 링컨 대통령의 요청으로 국무장관을 맡은 유력한 정치거물이었다. 슈어드 장관은 멕시코 영토를 포함, 미국의 영토 팽창을 강력하게 추구하던 인물이었다.

알래스카는 사실 미국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경제,산업적 잠재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의 베링해, 북빙양 조업이 활성화되던 시점이었기에 대규모 어선 선단이 거점으로 삼을 수 있는 중간 보급기지가 절실했다.


나아가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쪽의 통상 확대를 위해 알래스카는 최고의 거점이 될 수 있었다.

1867년 10월 18일. 마침내 당시 수도와 같았던 시트카에서 러시아와 미국 간에 영토 할양 인수인계식이 거행됐다.


러시아 깃발이 내려지고 성조기가 올랐다. 땅 값이 720만불은 워싱턴에서 금으로 결제키로 약조를 했지만 아직 잔금도 치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땅 주인이 바뀌는 세리모니가 거행된 것이다.

1천여명 남짓 남아있던 러시아인들에게는 본국 귀환 또는, 원할 경우 미국 시민권 신청을 통해 잔류도 허용됐지만 이들은 거의 대부분 알래스카를 떠났다.

이날, 이시각을 기점으로 알래스카는 명실공히 미국 영토가 됐다.


알래스카는 미국 전 국토의 5분의 1가량이 된다.

미국 50개주 가운데 한국 보다 영토 측면에서 덩치가 큰 곳은 37개주나 된다.

특히 알래스카를 한국과 비교해 보면 대략 한국 영토의 17배, 한반도 전체의 8배 가량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다.


알래스카는 일찍이 알려진 대로 동토 지대다. 주 전체 면적의대부분이 개발이 불가능한 얼음 땅이다. 알래스카의 일년 평균 기온은 섭씨 20도에서 영하 11도 사이. 겨울에는 영하 20도 이하를 기록할 정도로 추운 곳이다.

한국의 17배에 달하는 광대한 곳이지만 인구는 고작 70여만명 정도다. 서울의 송파구가 보다 조금 많은 인구가 이 너른 땅에 흩어져 살고 있는 것이다.

일년 내내 녹지 않는 만년설이 태반인, 그래서 러시아 쓸모없는 땅으로 여기고 헐값에 팔아 넘긴 알래스카지만 사실은 정 반대다.


알래스카는 말 그대로 천연자원의 보고다. 동토의 밑바닥에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있다.

러시아가 미국에 바가지를 씌웠다고 쾌재를 부른 지 채 30년이 안돼 러시아는 쓴 물을 맛봐야 했다. 알래스카에서 막대한 금이 발견된 것이다.

1890년 부터 지금의 유콘강을 따라 금광촌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미국 서부에 이어 알래스카가 제2의 ‘금 노다지’로 변모한 것이다.

금을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창 때는 그 수효가 10만명을 넘기도 했다.


러시아를 절망시키는, 알래스카 대박은 연신 터졌다. 석탄,구리,철광석, 아연등 귀한 금속들이 숱하게 묻혀있는 것으로 판명됐다.

20세기 중반 부터는 원유가 등장했다. 알래스카 연안에는 원유 160억 배럴 이상이 매장돼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우디, 베네수엘라에 이어 세계 3위의 매장량을 자랑하게 됐다.

알래스카는 또한 막대한 목재 생산 외에도 미국 수산업의 선도적인 요람이 됐다. 연어, 대구,알래스카 킹 크랩 등 미국서 생산되는 전체 수산 어획고의 3분의 1 이상이 알래스카산이다.


춥고 외진 곳이지만 때 묻지 않은 자연 경관, 오로라 등 북극권의 경관 등으로 인해 전세계에서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러시아가 단돈 720만달러에 팔어넘겼던 불모지가 150여년이 지난 지금은 미국 최고의 효자, 알토란 땅으로 역할하고 있는 것이다.


알래스카는 부자 주다. 2022년 기준 GDP가 642억5천700만달러.

1인당 GDP는8만 달러로 세계 4위권에 달할 정도다.의 가장 부유한 천연자원 개발, 특히 원유를 팔아 생기는 수입이 엄청나기에 주 재정은 탄탄하다. 주 정부가 챙겨놓고 있는 원유 판매 편드만 해도 600억달러가 넘는다.

여기서 나오는 이자 수입들의 일부가 주민들에게 생활보조금 형태로 지급된다. 알래스카에 살면 주정부가 돈을 준다는 것이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알래스카에는 또 상품 판매세, 주소득세도 없다. 미국 각주마다 평균6-10%에 달하는 판매세가 없기에 쇼핑 카트가 조금 더 두둑해진다.

원유가 지천으로 나는 곳이기에 휘발유세도 낮아 개스값 부담도 적다.

그러나 이렇게 주정부에 돈이 흔하지만 물가는 만만치 않다.워낙 추운 곳인 데다 또 1년중 절반은 낮에도 캄캄하거나 한밤중에도 해가 지지 않은 백야 지대이다 보니 농산물 경작이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생필품은 모두 외부에서 사온다.


게다가 워낙 산세가 험하고 삼림기 깊기에 도로 건설에 한계가 있어 상당수의 지역은 비행기로만 출입이 가능하다. 자연 교통이 불편하고 생필품 값이 비쌀 수 밖에 없다.

지역 주민들은 총괄적으로 물가가 미국 본토 평균에 비해 30% 이상 높다고 밝히고 있다. 주정부 살림은 넉넉하지만 주민들은 생활비 부담이 적지 않은 것이다.


알래스카는 전통적으로 공화당세가 강한 곳이다. 땅 덩어리는 미국의 20%나 되지만 국내 정치상으로는 별 힘이 없다. 미국의 의회는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다.

상원의원은 각 주별로 크기에 관계없이 2명씩이 배정됐다. 그러나 하원의원은 주민 인구수에 비례해 정해진다.

알래스카의 주민 70여만명에 할당된 연방하원의석은 달랑 1석. 그래서 알래스카는 상원의원수 보다 하원의원이 적은 신기한 곳이다.


주 전체가 지역구인 상원과 마찬가지로 연방하원 지역구 역시 주 전체가 된다. 선거 방식도 다른 곳과 다르다.

통상 민주-공화 양당이 프라이머리를 거쳐 후보자를 내고 이들이 본선에서 맞붙어 승리자가 해당 지역구의 하원의원에 당선돼지만 알래스카에서는 정당에 관계없이 1차 경선에 4명을 추려 이들을 두고 과반수 득표자가 나올 때 까지 투표를 거듭한다. 이 과정에서 특정 정파가 항상 다수를 기반으로 의석을 차지하기가 쉽지않다.

비록 공화당세가 강한 곳이면서도 민주당 의원이 나올 수 있는 이유다.


알래스카가 부자 주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주민들의 생활은 높은 물가와 제한된 일자리 등으로 숫자만큼 현저한 수준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알래스카가 추위나 다소 고립된 것 같은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다면 미국내 어떤 곳보다 살기 좋은 주 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자연환경과 더불어 호젓한 생활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 한 테 알래스카는 미국내 어느 곳 보다도 매력을 지닌 곳이다.


미국내 어디든 한인들이 없는 곳이 없지만 알래스카에도 여전히 한인 사회가 존재한다. 정확한 통계는 잡히기 어렵지만 한인 커뮤니티 관계자들에 의하면 알래스카내 한인들은 대략 6천-8천여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대처라 할 수 있는 앵커리지나 페어뱅크스 등에 주로 살고 있다.


앵커리지 00에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한인 상가도 존재한다. 앵커리지는 과거 미국을 오가던 한인 여행객들한 테는 낯설지 않은 곳이다. 당시에는 항로상 항공기가 앵커리지에 중간 기착, 잠시 머무는 식으로 운항됐기에 한인 여행객들은 잠깐이나마 앵커리지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 당시 인기 있었던 곳이 공항내 매점에 있었던 우동집이다. 한인들은 과거 심야 완행열차가 한밤중에 대전역에서 정차할 때 서둘러 맛보던 가락국수 맛을 앵커리지에서 즐기기도 했다.


알래스카는 미국령, 일종의 군관할을 거쳐 1959년에 미국의 49번째 주가 됐다.

알래스카의 가치는 단순히 경제적 가치를 넘어 군사,전략,안보면에서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만약 알래스카가 미국에 넘어오지 않았다면 당시 러시아의 영토는 샌프란시스코 북방 90마일쯤에 달할 정도로 미국의 코밑까지 뻗혀 있을 뻔 했다.


러시아 핵미사일, 전차, 장거리 포가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즐비하게 배치돼 있을 상황을 가정해 본다면 알래스카가 미국에 얼마나 요충지이며 상대적으로 러시아는 뼈에 사무칠 역사적인 패착을 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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