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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 그랜드 캐년-세도나의 본향

김용일 기자

미국은 50개주로 구성된 연방국가다.

미국 각 주는 크기와 규모, 경제력, 인구 등에 있어 웬만한 국가를 능가하는 곳들이 많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을 구성하고 있는 50개주의 면면 들을 주별로 소개해 본다.


애리조나의 별칭은 ‘구리 주(Copper State)’이다. 지하는 물론 노천 광산에서 대규모의 구리가 채굴된다. 미국 전체 구리 생산량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이다. 애리조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또 다른 알파벳 ‘C’들이 있다. 바로 면화(Cotton), 축우(Cattle), 감귤(Citrus) 및 기후(Climate) 등을 일컫는다. 이들 5개 C는 모두 애리조나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효자 상품들이다. 맨 끝의 기후는 애리조나가 특산품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시사철 햇빛이 쨍쨍한 날들을 일컫는데, 이렇게 맑은 날씨 덕분에 애리조나의 관광사업이 번창한다는 의미이다.


서부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경관을 가진 애리조나는 1848년에 멕시코로부터 미국 영토로 할양됐다. 주변의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네바다 등 7개 주들과 같은 경로로 미국 땅이 된 것이다. 미국 영토가 되기 이전의 역사도 비슷하다. 17세기 중엽 스페인계 탐사대가 이 지역을 먼저 찜했기에 스페인 영토로 간주하다가 소유권이 1821년 멕시코로 넘어갔고, 다시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패한 후 최종적으로 미국의 소유가 됐다.


애리조나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투손(Tucson)은 주 내 다른 지역과는 다른 방식으로 미국 영토가 된 곳이다. 미국-멕시코 전쟁 종료 5년 뒤인 1853년에 이루어진 ‘개즈던 매입(Gadsden Purchase)’은 말 그대로 미국이 멕시코에 당시 돈으로 1,000만 달러를 주고 추가로 사들인 것이다.


개즈던 지역은 투손을 포함한 남부 산악 지역으로 남부 쪽 대륙횡단철도 건설에 절대 필요하다는 주장에 따라 매입이 이루어졌다. 땅 넓이가 76,800km²로 남한 땅의 4분의 3 정도 되는 크기이다. 멕시코 주재 미국공사 제임스 개즈던의 이름을 딴 ‘개즈던 매입’은 미국 본토 내에서 이루어진 마지막 영토 확장이었다.


애리조나는 미국 영토가 된 지 62년 만인 1912년, 미국 본토에서는 가장 늦둥이라 할 수 있는 48번째 주로 합중국에 가입했다. 원래 한 몸이었다가 분리된 이웃 뉴멕시코주는 한 달 전에 47번째로 가입했었다.


애리조나는 사실 일찍부터 추진한 준주 건립의 요청이 연방의회에서 묵살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남북전쟁 때 남부 연합에 가담했었다. 그러자 남부 연합의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이 신속히 ‘애리조나 준주’ 설립을 추진해 법안 서명까지 마쳤으나, 결과적으로 남군이 패해 무산됨으로써 북부에 ‘미운털’만 박히는 꼴이 됐다. 당시 연방의회는 새로운 주에 대한 가입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노예주’와 ‘자유주’ 간 세력 균형을 맞추기가 기준이었는데, 애리조나가 노예주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연방 가입에 제동이 걸리곤 했다.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제외하곤 본토에서는 꼴찌로 미합중국의 정식 멤버가 됐지만 애리조나는 곧장 진가를 발휘했다. 인디언 나바호족, 아파치족 등과 장기간에 걸쳐 충돌도 있었지만, 1880년대 초반 금, 은 등이 발견되면서 채굴꾼을 포함한 유입자들이 크게 늘어 경제 발전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이어 1936년 후버댐이 세워지면서 콜로라도강 수자원에 대한 강력한 연고권을 확보하면서 주의 입지가 더욱 강화됐다. 늘 물 부족에 시달리는 서부 지역 주들 사이에 전개되는, 이른바 ‘물 전쟁’에서 확고한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이다.


애리조나의 보물은 지하자원뿐 아니라 지상에도 있었다. 세계 최고 경관 중의 하나로 꼽히는 그랜드캐니언(Grand Canyon)이 바로 그것이다. 전장 440km에 달하는 콜로라도강이 흐르면서 형성한 협곡은 360km 정도에 달하는 데, 이 중에서 가장 압권인 구간이 바로 그랜드캐니언이다.


그랜드캐니언은 약 7,000만 년 전 지반이 융기하면서 만든 3,000m 정도 높이의 고원이 콜로라도강 급류에 깎이면서 만들어졌다. 협곡은 가장 좁은 곳이 약 180m, 가장 넓은 곳은 29km에 달하며, 협곡의 깊이는 1.6km 정도에 이른다. 그랜드캐니언은 지금도 매년 더 깊이 파이고 넓어지고 있다. 워낙 물살이 세기 때문에 휩쓸려 내려가는 돌들이 협곡 바닥을 훑으면서 깎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랜드캐니언은 1903년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현장을 직접 방문한 후 대자연의 경관에 감격해서 국립공원 지정을 서둘렀다는 일화가 있다. 그랜트캐니언은 4월에도 눈이 내릴 때가 있지만, 한여름에는 섭씨 48도 안팎을 오르내리는 혹서 지대이기도 하다.


라스베이거스에서 160km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곳은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서부 최고의 명소 중 하나이다. 2022년 한 해 동안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 수는 470만 명을 넘었고, 이를 통해 주변 경제에 1만 개 이상의 일자리와 10억 달러가 넘는 생산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됐다.


야바파이 카운티에 있는 세도나(Sedona)도 애리조나에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는 곳이다. 해발 1,330m의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어 공기가 맑고 깨끗한 데다, 기(氣)가 성한 곳이라는 속설에 따라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성지처럼 여겨지고 있다. 도시 대부분이 붉은색 사암인 데다, 외곽을 둘러싼 웅장한 바위들이 신비함과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세도나는 원주민 인디언들이 성스럽게 여기며 오랫동안 숭배해 오던 곳이다. 그래서 외부인들의 정착도 1900년대 초반에서나 시작됐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일찍부터 성소(聖所)라든가, 우주의 에너지와 기가 모이는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에 따라 단순 휴양지를 넘어 명상, 영적 체험 등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애리조나는 대선에서 1952년 이래 40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지 못했던 ‘찐 보수’ 주였다. 그러다가 1996년에 클린턴이 한번, 2020년에 바이든은 애리조나에서 신승을 거뒀다. 이렇게 되자 애리조나의 난공불락 ‘레드 아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만 낙태나 이민법 등 사회적인 이슈들에 관해서는 여전히 강경 보수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애리조나의 면적은 295,254km²로 50개 주 가운데 6위, 남한보다는 거의 3배가량 크다. 반면 2020년 기준 인구수는 715만 명으로 같은 해 5,180만 명을 기록했던 한국 인구의 14%가량에 불과하다. 애리조나의 GDP는 2023년 기준 5,125억 달러로 미국 내 18위, 그리고 세계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는 이스라엘이나 노르웨이보다는 조금 적고, 필리핀이나 베트남, 이란보다는 약간 많은 세계 33위에 오르는 규모이다.


애리조나 경제는 얼핏 지하자원이 중심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농축산물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애리조나 경제를 뒷받침하는 대표 항목에 들어 있을 만큼 면화와 육우 생산이 많으며, 건조하고 높은 기온을 갖고 있기에 양질의 감굴류 특산지이기도 하다.


애리조나 전반이 그렇지만, 특히 남부 지역의 경우 세계에서 일조량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주도 피닉스(Phoenix)는 연간 3,800시간대가 넘고, 유마(Yuma)는 4,000시간 이상으로 명실공히 세계 1위이다.


이러한 기후 조건은 농작물 생산에 기여하는 것 외에 국방 분야의 ‘고객’도 유치할 수 있는 좋은 장점이 됐다. 애리조나에는 2차대전 중에 많은 공군기지가 들어섰다. ‘햇볕’을 특산품이라고 여길 만큼 연중 맑은 날이 많아 공군기지 운용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투손의 데이비스-몬선 공군기지, 루크 공군기지 등 주요한 공군시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대규모 기지에 주둔하는 병력의 가족들이 이주해 정착하면서 사막 지역의 인구 증가 및 경제 성장도 뒤따랐다.


주의 인구는 1950년대 중반에는 70%대까지 급증했다. 애리조나 역시 멕시코 접경 지역의 다른 주와 마찬가지로 히스패닉계 인종의 비율이 높다. 대략 주민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특히 미국 내 최대 규모에 속하는 인디언 보호구역들이 주 내에 자리잡고 있다. 나바호족 보호구역의 경우 애리조나주 북동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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