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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

인문학 전공 졸업 후 맞는 일자리가 적다

인문학 전공 후 로스쿨 진학은 옛날 얘기

2008년 신용 위기 이후 산업 재편으로 일자리 줄어


대학생들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자신을 보장하거나 고임금 직업으로 이끄는 전공을 원한다.

이것이 스템 (STEM: 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수학 전공)과 의료 분야 그리고 경영 관리 같은 블루칼라 직업 분야의 전공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2000년대와 2010년대 초에 인문계 전공자들의 큰 폭등을 돌이켜보면 엘리트 과잉 배출이라는 의견을 돌아보게 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미국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큰 기대를 가진 고학력의 많은 사람들을 배출했지만 정작 경제와 사회 시스템은 이런 기대 중 많은 부분을 수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좌절과 실망으로 인한 파괴적인 행동이 일어났고 대표적인 예가 “월가를 점령하라”다.


대학 졸업자인 엘리트 과잉 배출은 교육을 잘 받은 많은 밀레니얼 세대가 실업자나 불완전 고용 상태에 있으면서 기대하는 높은 지위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COVID-19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에 특히 고용 전망이 어두운 인문 사회과학 분야에서 초과 학위 소지자를 계속 배출했다. 인문 사회 과학 분야의 대학 졸업자가 너무 많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학자들은 노동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몇 가지 가정을 한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노동 수요의 중요성을 무시하면서 노동 공급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일자리가 없는 전공 분야의 대학 졸업자가 많은 것이 아니라 많았던 이 분야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사회 변화가 더 문제로 지적되어야 한다.


한 번에 사라진 인문학 관련 일자리

2008년 신용 위기가 나타나기 전 영어나 역사학 학위로 졸업했다면 상당수가 로스쿨로 가서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안정적이고 명망 높은 고임금 직업을 나름대로 찾을 수 있었고 동부 해안에 살면서 낭만적인 평판을 가진 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면 미디어나 출판계에서 일할 수 있었다. 지적인 자극과 위신을 원했다면 학계에 도전해도 괜찮았다. 보안과 안정성만 원하고 돈이나 화려함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면 K-12 교사가 되거나 정부에서 일할 수 있었다.


이런 풍부한 직업 경로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인문학을 전공하는 것이 나름 안전하다고 느끼게 했다. 영어 학위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도 불구하고, 원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많았다. 인문학 공부는 재미있고 지식인이 된 기분이 들게 했으며 하루 종일 연구실이나 컴퓨터 화면 코딩 앞에 갇힌 것보다 사교 기회가 훨씬 많았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젊음의 충만함을 즐긴 후에 부모가 가졌던 것과 같은 큰 교외 집과 개와 아이들, 차 2대 차고를 얻으려면 헤지펀드 회사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2008년 대불황 이후 몇 년 동안 이런 모든 직업 경로는 훨씬 더 어려워졌다.


인문학 전공의 궁극적인 대안인 법조계는 1970년경부터 미국의 1인당 변호사 수에서 엄청난 호황을 누렸지만 21세기에 접어들 무렵에는 고용 변호사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2008년에 시작된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해 법률 서비스 고용이 침체되었다. 로스쿨에 가는 젊은이들은 넘쳐났지만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몇 년 후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았고 로스쿨 등록률은 이후 크게 떨어졌다.


뉴욕의 유수한 출판업계도 업계의 타이탄 존재 역할을 했던 기업이 몰락하면서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물론 인터넷도 있어서 디지털 출판이 성장하고 있지만 과거 뉴스룸, 책, 잡지 그리고 신문의 황폐함을 만회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학계의 경우 인문학 분야의 정년 채용은 결코 강력하지 않았지만 2008년 신용 위기 이후 대학교의 지원 자금이 감소하면서 인문학 전공이 축소되거나 폐지되면서 쇠퇴했다.


대학들은 인문학 종신 교수를 저임금 시간 강사로 교체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차 안에서 잠을 자던 시간 강사들이 어떻게 든 운이 좋을 경우 정년 트랙의 대열에 오를 것이라는 절망적인 희망 속에 매년 임용을 기다린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보더라도 2008년은 작은 정부를 원칙으로 내세우며 고용의 오랜 호황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K-12 교직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적용되는 데 2008년 이후 고용이 정체된 것 외에도 해당 직종은 편안하지 않은 힘든 직업으로 전락했다.


2008년 이후 달라진 일자리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에 인문학 졸업생을 위한 이런 모든 전통적인 직업 경로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동시에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이런 급증은 많은 사람들이 정확히 잘못된 시기에 직업을 갖지 못하게 되면서 이들을 경력에 실망하게 만들었다. 2010년대에는 금융 위기와 도드-프랭크 (Dodd-Frank) 금융 개혁으로 적어도 일시적으로 길들여진 호락호락한 월가가 아니었다.


금융은 순조롭고 덜 권위 있는 산업이 되었고 전반적인 고용은 정체되었다. 1980년대에 미술 고고학 학위를 취득하고 채권 판매원으로 이름을 날린 사례도 있지만 2008년 이후의 금융가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물론 실리콘 밸리도 있었다. 2010년대에는 두 번째 IT 붐, 구글과 페이스북, 나머지 빅테크 (Big Tech)의 부상, 벤처 자금 지원을 받는 스타트-업 경제의 폭발이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IT 직업도 걸림돌에 직면했다. 물론 구글에서 엔지니어로 많은 돈을 벌 수는 있지만 이제 "코딩 배우기"는 미술사 학위를 취득한 직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2010년대에는 그런대로 일자리가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전 수십 년보다 훨씬 더 경쟁적이었다.

기업에서 틀에 짜인 근무를 하는 지루한 직업을 얻기 위해서 서로 경쟁해야 했다. 그리고 인문학 전공자들이 준비한 지적으로 보람 있는 직업이나 사회적으로 권위 있는 직업은 특히 부족했다. 엘리트 과잉 배출 가설은 이런 상황이 2010년대 후반의 불안으로 폭발한 사회 환경을 만들어 냈다고 교육 전문가들은 말한다.


높아지는 기대와 변해버린 사회

대학 졸업 후 욕구가 충족될 것이란 기대가 계속 높아지면서 기대와 현실 사이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상향 이동하는 사람들,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에 있는 사람들, 또는 주식이나 주택의 가치가 꾸준히 평가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시간이 정상처럼 보일 수 있다. 행복이란 현실과 기대의 차이일 뿐이다.


예상보다 현실이 나아지면 행복하고 상황이 더 나빠지면 불만이 쌓이고 화가 난다. 90년대 초반부터 견조했던 생산성 성장은 2005년을 전후해 급격히 둔화되었다. 중산층 부의 큰 결정 요인인 주택 가격은 2006년에 안정을 취한 후 2007년에 폭락하기 시작했고 경제는 대불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엘리트, 특히 인문학 트랙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불황 이후 몇 년은 특히 잔인한 폭풍우에 내던져졌다. 저소득과 중간 소득을 가진 사람의 경우 소득이 크게 정체되었지만 중산층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꾸준한 성장이 있었고 중산층은 대학 졸업자가 자신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는 계층이다. 2000년대와 2010년대 초에 많은 젊은이들이 인문계 전공으로 몰려들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이중 보상을 기대했음을 시사한다. 좋은 수입을 얻는 직업을 가지면서 개인의 관심사에 맞는 취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영문학 학위를 취득한 막 졸업한 25세의 관점에서 지난 4년 동안 지식인의 삶을 살았다.

수십 권의 책을 읽었고, 사회와 역사, 삶의 목적에 대한 100가지의 깊은 생각으로 마음을 넓혔고, 자신만큼 똑똑한 사람들과 함께 그런 생각에 대해 토론하는 긴 밤을 보냈다.


그리고 그 동안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교에 갔든, 부모를 자랑스럽게 만들고 싶어 하는 상류층 가정의 후예이든, 대학이 미국 사회의 상위 20%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대학을 택한 사람과 가족은 확실히 그 기대를 반영하는 가격표를 지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 자신이 지불한 교육을 활용해 얻을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직업을 찾을 수 있고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졸업하고 아무도 변호사를 원하지 않고 잡지는 사라지고 뉴스 룸은 죽어 가고 대학은 고용하지 않는다. 최선의 방법은 몇 년 동안 대학원을 다니고 다시 주사위를 굴리거나 기업의 무인 항공기 관련 직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졸업장이 부모님 다락방 상자에서 썩어가는 동안 하루 종일 업무 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40,000 달러의 학부 학자금 부채에 시달리고 이제 지불 기한이 다가오고 있다. 이런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자격이 없거나 건방지거나 오만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그렇게 변한 탓이다.


기대치 재설정 필요한 엘리트

인문학 경력이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최악의 타격을 입었으나 2010년대의 불안은 이동성이 낮거나 고용이 불가능한 어학 전공자를 벗어나 대부분의 젊은 엘리트를 고통에 빠지게 한 광범위한 현상이었다.


대학 학위를 가진 젊은 이들은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교육만 받은 동료보다 직장에서 덜 행복했다. 이런 불행은 사회 개혁을 위한 목소리로 나타났고 학자금 탕감과 무료 대학의 목소리가 이를 그대로 반영한다. 2020년 여름 대규모 시위 동안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불균형적으로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2010년대 초 엘리트 사회의 정체된 위계에 대한 좌절감의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


결국, 대학 학과, 회사, 학교 그리고 정부 기관의 일자리 수가 갑자기 증가하지 않는다면, 이는 이전보다 더 큰 차별과 다양한 인구를 감안할 때 젊은이들의 상향 이동이 기존 노인 집단에 의해 차단될 것임을 의미한다.


오히려 좌절하고 불완전 고용된 엘리트들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이제 교육 양극화는 불안하고, 좌절하고, 재능이 있고, 교육을 많이 받은 젊은이들로 구성된 대규모 개혁을 생성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현실과 기대치의 차이를 행복으로 측정한다는 것을 소환하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대치를 낮추고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현실을 기대치에 근접하게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을 개선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시간도 오래 걸린다.


바이든 행정부의 산업 정책이 더 빠른 경제 성장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모든 계층의 생활비를 줄이는 가격 하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의 기술 붐과 값싼 석유와 같은 더블 효과가 없다면 성장과 풍요로움을 달성하는 것은 느리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기대치를 보다 현실적이거나 심지어는 비관적인 수준으로 재설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인문학 전공을 경제적 낙관주의의 척도로 삼는다면, 젊은이들이 보다 실용적인 수준으로 전환함에 따라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학 역시 부와 지적 성취를 위한 황금 열쇠를 주는 것으로 선전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사라졌던 아날로그 산업에 가까운 일자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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