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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교 기자

"너 죽을래?"가 협박 발언?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인이라면 항상 말조심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선 관용적인 표현으로 쓰이는 말들이 미국에선 문화 차이 때문에 심각한 위협 발언으로 여겨져 관계를 해치고 심지어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한국에선 농담에 가까운 ‘죽고 싶으냐’는 말을 영어로 하면 타인에게 오해를 사기 좋다.

반대로 다른 미국인으로부터 아시아계 혐오 발언을 들었으나 언어의 장벽 때문에 한인들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말에 관한 미국의 법을 살펴보고 다양한 아시아계 혐오 표현을 알아두면 향후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할 수 있다.


어떤 발언이 문제 되나

말을 통해 행해지는 대표적인 범죄로는 협박죄와 폭언·모욕죄가 있다.


알링턴 메이 로의 마이클 C. 메이 파트너 변호사는 “신체적 행동을 하겠다고 암시하면 협박에 해당하고, 말한 사람이 정말 상대를 해칠 능력이 있었다면 형사 처벌은 물론이고 민사 소송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폭언·모욕도 형사로 갈 수 있지만 징역이 아니라 벌금만 내면 되는데, 특정 발언은 민사 소송이 가능할뿐더러 특히 허위 발언이라면 명예 훼손으로 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의 경우 협박은 최소 B급 경범죄로 간주해 3개월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버지니아는 대체로 글로 쓴 위협 발언에 협박죄를 적용된다.

여기서 글이란 문자나 사회관계망서비스 (SNS) 메시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타인이나 그의 가족에게 현실적인 신체적 위협을 느끼게 하면 6급 중범죄가 성립한다.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고 대중이나 정부를 상대로 위협 발언을 했다면 5급 중범죄, 미성년자가 같은 행위를 했다면 1급 경범죄로 다뤄진다.

학교나 학교가 관리하는 공간에서 교직원에게, 혹은 의료 시설에서 직원에게 협박 발언을 했다면 글로 쓰지 않았어도 말만으로 1급 경범죄가 된다.


메이 변호사의 지적대로 폭언·모욕은 협박보다 형량이 낮다.

타인에게 욕설이나 막말을 해 심리적 안정을 해쳤다면 3급 경범죄에 해당한다.

5급 중범죄는 형량이 징역 1년에서 10년, 6급 중범죄는 1년에서 5년 사이다.

다만 운이 좋으면 배심원단이나 판사의 재량으로 1급 경범죄 수준의 처벌만 받을 수도 있다.

1급 경범죄는 징역 12개월에 벌금 2,500달러, 3급 경범죄는 벌금 500달러가 최고 형량이다.


버지니아 페어팩스에 자리한 레플러 필립스 로펌의 조너선 필립스 변호사는 “폭언·모욕으로 형사 재판을 진행하고 유죄 판결을 받는 건 쉽지 않다”면서도 “수위가 높고 발언 내용이 심각한 경우 통신상 괴롭힘으로 인정받는 등 행정 제재를 받을 수도 있고, 민사 조치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폭언과 함께 상대방을 길에서 쫓아가거나, 일하는 곳에 찾아가거나, 떨어져달라고 요구해도 거절하는 등의 행위도 했다면 보호명령을 받거나 심하면 스토킹 혐의가 성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후 맥락이 중요

실제로 가벼운 장난으로 한 말이 오해를 사 법정 다툼으로 가는 경우는 흔하다.

필립스 변호사는 “누군가가 한 말이 상대방에게 본의와 전혀 다른 뜻으로 받아들여져 법원에 가는 사례를 여럿 봤다”고 털어놨다.

메이 변호사는 “일반 소송을 할 때도 본인이 한 모든 말은 법원에서 자신에게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며 “내가 맡은 모든 사건에서 자기가 보낸 문자, 이메일, 녹취된 발언에 발목을 잡히는 사람을 봤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법원에 간다고 항상 유죄 판결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들은 법원이 발언이 나온 배경을 고려해 재판을 진행한다고 입을 모았다.

필립스 변호사는 “언제나 맥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장시간 통화를 하다가 웃으면서 ‘죽는다’라고 한 것과 격앙되고 공격적인 분위기로 통화하다가 그런 것, 혹은 차단당한 번호로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하는 문자를 수차례 보내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메이 변호사도 “농담인지 협박인지는 말의 내용에 달리지 않았다”며 “합리적으로 봤을 때 신변의 안전에 합리적인 우려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는지가 핵심”이라고 밝혔다.

이어 “똑같은 ‘죽는다’는 말도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한 것과 배우자와 다투다가 한 것은 사안이 다르다”며 “법원은 맥락을 보고 협박인지 아닌지 결론짓는다”고 설명했다.


같은 말도 어떤 형태로 했는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필립스 변호사는 “문자로 명백하게 위협 의도를 써서 보냈다면 중범죄가 될 수 있고, 전화를 사용한 위협이라는 경범죄가 될 수도 있다”며 “하지만 글이 아닌 육성으로, 그것도 전화가 아니라 대면으로 한 발언은 형사 조치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메이 변호사는 “아무래도 글은 기록이 남으니 증명하기 쉽다”며 “말은 증명이 어려워 녹음이나 증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동양인 비하 표현 무엇이 있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혐오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한인들을 상대로 한 언어폭력 사건도 증가하고 있다.

작년 12월에는 캘리포니아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한 남성이 식사 중이던 한인 2명에게 다가와 “김정은의 애인이 아니냐”며 신체적 협박을 가하기도 했다.


김정은 언급은 미국에서 한인들이 당하는 대표적인 인종차별 방식 중 하나다.

아무런 맥락 없이 ‘김정은 친척 아니냐’고 묻는 등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조롱하는 것으로, 들은 사람은 기분이 나빠도 폭언이나 욕이라고 하기 모호해서 제대로 대처하기 쉽지 않다.


이 밖에도 한인과 아시아계를 향한 차별적 표현은 많다.

국(gook)은 무려 1920년대부터 쓰인 아시아계를 뜻하는 멸칭이다.

한국어 나라 이름에 다수 들어가는 ‘나라 국(國)’ 자를 음차한 단어라고 추측하는 경우가 많으나, 정확한 어원은 불명이다.


6.25와 베트남 전쟁을 거치며 미군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으며, 오늘날에는 한국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

한국의 전통 음식인 김치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김치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중국인을 뜻하는 멸칭이 한인에게도 쓰이기도 한다.

칭크(chink)나 칭총(ching chong), 차이나맨(chinaman)이 여기 해당한다.

브라우니(brownie), 붓다헤드(buddhahead), 쿨리(coolie), 딩크(dink), 슬로프(slope), 슬랜트아이(slant-eye), 집(zip)은 아시아계를 전반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팬데믹 발발 후로는 코로나바이러스도 아시아계 혐오 표현으로 부상했다.


혐오에 대처하려면

그렇다면 타인에게 아시아계 혹은 한인에 관한 차별적인 언사를 들었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버지니아 법에 따르면 사람의 성별이나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차별적인 발언을 하거나 위해를 가한 경우 혐오 범죄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혐오 표현이라는 독립적인 죄가 있는 게 아니라, 일반 범죄 중 차별적인 성격이 있는 것을 혐오 범죄로 분류하고 가중 처벌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협박이나 폭언·모욕, 명예 훼손으로 재판을 할 때도 문제의 발언이 혐오 표현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필립스 변호사는 “누군가가 모멸적인 발언과 함께 폭력, 구타를 저질렀다면 혐오 범죄로 기소할 수 있다”며 “문제의 발언이 통화 중에 나왔고 수위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통신법에 따라 부적절한 표현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메이 변호사는 “직장이나 공공장소에서 누군가가 한인을 향한 반감을 표시하며 비하 발언을 했다면 차별로 고소할 수 있다”며 “상사가 직원을 해고하며 ‘한인이 싫으니 나가라’고 했거나, 식당에서 손님에게 ‘한인 손님은 오지 말라’고 한 경우’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개인이 길 한복판에서 ‘나는 한인이 싫다’고 말하면 분명 나쁘고 멍청한 발언임에도 폭력을 행사할 뜻을 밝힌 게 아닌 이상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반적인 협박이나 폭언 사건에서도 그렇듯, 혐오 범죄를 당한 경우에도 침착한 대처가 필수적이다.

필립스 변호사는 “상대가 문자나 글로 혐오 표현을 했다면 반드시 사진이나 스크린숏을 찍고 원본을 보존하라”며 “’방금 발언이 상처와 공포심을 줬으니 멈춰달라’고 대답해놓으면 상대방이 또 비슷한 말을 했을 때 경찰이나 법원이 제재나 보호 조치를 할 가능성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이어 “휴대전화에 녹취 기능이 있으니 상대가 그만하라는 요구를 무시하는 것을 녹음해두라”며 “신체적, 언어적으로 보복하면 역으로 본인이 기소당할 수 있고, 형사 고소나 보호 명령 성공률도 내려간다”고 강조했다.


메이 변호사도 “신체적 위협을 받으면 경찰에 신고하고, 그렇지 않으면 변호사를 찾아가 어떤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살펴보라”며 “괜히 도발에 응했다가 상황이 심각해지고 신체적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결론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신성시하는 ‘자유의 나라’이지만, 동시에 무심코 한 말 한마디가 심각한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소송의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의 소송 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언어도 잘 모르는 일부 한인들로서는 극도로 말조심을 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관용구로 쓰이는 ‘죽을래’와 같은 말 때문에 형사 처벌을 받거나, 운 좋게 이를 피해도 민사 소송을 당할 수 있다.


소송을 하는 것만으로 변호사 비용과 시간을 써야 하고, 패소하면 손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할 수 있다.

문제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타인에게 말할 때 위협적으로 들리는 표현을 자제하려 각별히 유의하는 게 좋다.

반대로 한인을 상대로 한 혐오 발언에 대처하는 방법도 알아두면 도움이 될 수 있다.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하거나 소를 제기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지거나 갚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미국에서 법을 숙지하고 언어 습관을 조심하는 것은 큰 무기이자 자기 보호 수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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