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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영 기자

뱅크런 역사


100년간 예금인출 사태는 달라져

당시 상황에 따라 은행 위기가 달라

은행을 망하게 하는 공통된 장면은 예금주들이 돈을 찾기 위해 한꺼번에 은행으로 몰려갔을 때이다.

지난 100년동안 은행들은 다양한 이유로 파산했는데 은행 예금 인출을 위해 줄을 서는 뱅크런 (Bank-run)은 여전히 목격되고 있다.


2023년 3월 10일 실리콘 밸리 은행 (SVB)의 파산은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연준에서 일한 은행 시스템 학자도 실리콘 밸리 은행 (SVB)의 붕괴를 예상하지는 못했다.

일반적으로 은행은 모든 기업과 마찬가지로 부진한 실적이 장기간 지속되면 도산한다. 그러나 국내 16위 은행인 SVB는 불과 몇 달 전 까지만 해도 2022년 4분기에 약 15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안정적이고 수익성이 높았다.


그러나 금융의 역사는 겉보기에 안정적이고 수익성이 있어 보이는 은행이 예기치 않게 도산한 사례로 가득 차 있다.


2008~2009년 금융 위기 동안 두 개의 유명한 투자 은행인 리먼 브라더스 (Lehman Brothers)와 베어스턴스 (Bear Stearns)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기관인 칸츄리와이드 (Countrywide Financial Corp.)의 몰락, 1980년대의 저축 대출 은행 (Saving & Loan) 위기, 그리고 대공황 동안 미국 은행 시스템의 완전한 붕괴는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경제 상황의 예상치 못한 변화로 인해 초기에 한두 건의 은행 파산이 발생했고, 그 후 전반적인 공황과 대규모 경제 위기가 뒤따랐다.


이번 사태의 주요 차이점은 현대적 기술 혁신이 실리콘 밸리 은행 (SVB)의 도산을 앞당겼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대부분의 뱅크런 (bank-run)은 sns에서 삽시간에 예금 인출을 독려했다는 점이다.


대공황 (Great Depression)

1929년부터 1941년까지 지속된 대공황은 은행 운영과 금융 공황이 야기할 수 있는 대중의 피해를 전형적으로 만들었다.


광란의 1920년대의 급속한 경제 확장에 이어 미국 경제는 1929년 초에 둔화되기 시작했다. 주식 시장은 1929년 10월 24일에 폭락했다. 이 날짜는 "검은 화요일"로 알려져 있다. 투자자들이 겪은 막대한 손실은 경제를 약화시켰고 일부 은행에 고통을 안겨주었다.


돈을 모두 잃을 것을 두려워한 고객들은 약한 은행에서 자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그 은행들은 차례로 예금자들에게 돈을 지불하기 위해 대출과 기타 자산을 빠르게 매각하기 시작했다. 예금을 돌려주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이런 급속한 매각은 자산 가격을 더욱 낮추었다.


이 금융 위기가 확산됨에 따라 인근 은행에 계좌가 있는 예금자들도 모든 돈을 인출하기 위해 줄을 서기 시작했고, 이는 본질적인 뱅크런 (bank-run)으로, 1933년 초까지 수천 개의 은행이 파산했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의 첫 취임 직후, 연방 정부는 일주일 내내 전국의 모든 은행을 폐쇄했다. 이런 도산은 은행이 더 이상 돈을 빌려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로 인해 점점 더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실업률은 약 25%까지 치솟았고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장기간 위축되었다.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부는 1933년 글래스-스티걸 법으로 은행 규제를 강화했다.

소비자와 중소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업 은행이 투자 은행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고 특정 임계 액수까지 예금을 보장하는 회사인 연방 예금 보험 공사를 만들었다. 이 한도는 1933년 2,500 달러에서 2010년 250,000 달러로 지난 90년 동안 급격히 증가했다. 오늘날에도 같은 한도가 적용된다.


저축 대부 조합 (S&L) 위기

국가의 새롭고 개선된 은행 규제는 약 50년 동안 지속된 은행 시스템의 상대적 안정 기간을 이끌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저축 대부 조합 (Saving & Loan)으로 알려진 수백 개의 소규모 은행이 도산했다. 저축과 대출이라고도 불리는 저축 대부 조합은 일반적으로 가계에 주택 담보 대출을 제공하고 지역 사회에서 예금을 모으는 소규모 지역 은행이었다. 1979년부터 연준은 고착화된 높은 인플레이션에 맞서기 위해 매우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에 의회는 은행이 예금자 계좌에 대해 시장 금리를 지불하도록 허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저축대부조합 (S&L)이 고객에게 지불해야 하는 이자율은 이전에 대출을 통해 얻은 이자 소득보다 훨씬 높았다. 그 불균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돈을 잃었다.


1986년부터 1992년까지 약 750개 저축 대부 조합 (S&L) 3개 중 1개가 도산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규모 저축 대부 조합 (S&L) 예금자는 연방예금보험공사 (FDIC)의 당시 100,000 달러 보험 한도에 의해 보호를 받았다. 궁극적으로 그 위기를 해결하는 데 납세자들은 오늘날 가치로 약 2,500억 달러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저축 대출 (S&L) 산업은 그 시대의 대형 은행과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형 은행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대형 은행의 예금인출 사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축대부조합 (S&L) 붕괴와 정부의 규제 대응은 실물경제에 대한 신용 공급을 위축시켰다.


그 결과 미국 경제는 1990년 후반과 1991년 1/4분기에 약간의 불황을 겪었다. 그러나 은행 시스템은 거의 20년 동안 더 이상의 어려움은 피했다.


대침체 (Great Recession)

이런 상대적 안정을 배경으로 의회는 1999년 글래스-스티걸 법의 대부분을 폐지해 은행이 종사할 수 있는 사업의 범위를 제한하는 대공황 시대의 규정을 제거했다. 이런 변화는 2007년 12월에 시작된 경기 침체의 시작과 함께 전체 금융 부문이 패닉에 빠졌을 때 일어난 사태에 기여했다.


당시 대공황 시대의 증권 거래 제한에서 해방된 대형 은행과 투자 은행, 헤지 펀드 그리고 기타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 외부 기관은 일종의 모기지 담보 증권 (MBS)에 많은 투자를 했다. 많은 주택 소유자로부터 모기지 지불금을 모았다. 이 채권은 그 시대의 주택 붐 속에서 매우 수익성이 높았고 많은 금융 기관이 기록적인 이익을 거두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연준은 2004년부터 경기 둔화를 위해 금리를 인상해 왔다. 2007년까지 변동 이자율 모기지를 보유한 많은 가구는 더 이상 예상보다 많은 주택 대출금을 지불할 여유가 없었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은 모기지 채무 불이행을 우려하게 되었고 모기지로 뒷받침되는 증권의 가치는 급락했다.


어느 투자 은행이 이런 취약한 증권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돈을 받지 못할 위험을 무릅쓰고 발견하기를 기다리는 대신 대부분의 예금자들은 2007년 말까지 돈을 인출하기 위해 서둘렀다. 이 압류로 인해 2008년과 2009년에 연쇄 은행 도산이 발생했고 연방 정부는 일련의 대규모 구제 금융으로 대응했다.


정부는 2008년 12월 자동차 산업의 도산을 막기 위해 국내 3대 자동차 기업 중 두 곳인 제너럴 모터스와 크라이슬러를 구제금융하기도 했다. 그것은 주요 자동차 회사들이 금융 시스템에 의존해 잠재적인 자동차 구매자에게 새 차를 구입하거나 임대할 수 있는 신용을 제공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그러나 금융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구매자는 더 이상 새 차량을 융자하거나 임대할 수 있는 신용을 얻을 수 없었다. 대불황은 2009년 6월까지 지속되었다. 주가는 50% 이상 급락했고 실업률은 1980년대 초반 이후 최고 수준인 약 10%로 정점을 찍었다.


대공황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는 2010년 도드-프랭크 법으로 알려진 새로운 금융규제법을 포함해 중요한 새로운 규제로 이 금융 위기에 대응했다. 이 법안은 자산이 500억 달러 이상인 은행에 엄격한 새로운 요구 사항을 부과했다.


은행과 가까운 친밀한 고객

의회는 법안을 승인한 지 불과 8년 만에 도드-프랭크 (Dodd-Frank)의 가장 중요한 변경 사항 중 일부를 철회했다. 특히 자산 규모가 500억 달러에서 2,500억 달러 이상인 은행에 가장 엄격한 요건이 적용되었다.


의회가 2018년에 통과시킨 이 변화는 실리콘 밸리 은행 (SVB)와 같은 지역 은행이 훨씬 적은 규제 감독으로 빠르게 확장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SVB가 경고 없이 그렇게 갑자기 무너질 수 있었을까? 특이하게도 SNS가 뱅크런 (Bank-run)을 부추겼고 소셜 네트워크가 은행을 망하는데 기여했다.


은행은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한다. 그러나 대출은 장기 계약이다. 예를 들어, 모기지는 30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예치금은 언제든지 인출할 수 있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은행은 고객을 위한 자금이 필요한 경우 신속하게 판매할 수 있는 채권과 기타 증권에 투자할 수 있다.


실리콘 밸리 은행 (SVB)의 경우 미국 국채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이런 채권은 연방 정부가 발행한 부채이므로 디폴트 위험이 없다.


그러나 새로운 채권이 오래된 채권에 비해 더 높은 이자를 지불하기 때문에 금리가 오르면 가치가 떨어진다.

실리콘 밸리 은행 (SVB)는 금리가 0에 가까웠을 때 보유하고 있던 국채를 많이 사들였지만 연준은 2022년 3월부터 꾸준히 금리를 인상했고 새로운 국채에 사용할 수 있는 수익률은 향후 12개월 동안 급격히 증가했다.


일부 예금자들은 실리콘 밸리 은행 (SVB)가 모든 고객에게 상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높은 가격에 이런 채권을 판매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불행하게도 실리콘 밸리 은행 (SVB)의 경우 이런 예금자들은 대부분 기술 부문 또는 신생 기업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들은 두려움을 공유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 그룹 문자 메시지 그리고 기타 현대적인 형태의 빠른 커뮤니케이션을 사용했고 이는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많은 거액 예금자들이 동시에 자금을 빼내기 위해 몰려들었다. 거의 100년 전 대공황 때 일어난 것과는 달리 그들은 일반적으로 은행 지점에서 혼란스러운 줄을 세우지 않고 온라인으로 돈을 인출하려고 했다.


지역 소규모 은행 위험 상존

정부는 퍼스트 시티즌 은행 (First Citizens Bank)와 소규모 금융 기관인 시그니처 은행(Signature Bank)에 매각되는 실리콘 밸리 은행 (SVB)를 도산하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250,000 달러 한도를 초과하는 예금을 포함해 모든 예금자에게 상환하기로 합의했다.


당국이 은행 시스템의 모든 예금을 명시적으로 보장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실리콘 밸리 은행 (SVB) 예금자들에 대한 구제금융은 정부가 은행 시스템의 예금을 보호하고 전반적인 패닉을 방지하기 위해 특별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연준이 여전히 인플레이션과 싸우고 금리를 인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조치가 효과가 있을지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미국의 주요 은행들은 안전해 보이지만 소규모 지역 은행들 사이에 위험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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