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고향' 루이지애나…거친 역사의 현장
- 김용일 기자
- 6일 전
- 4분 분량

루이지애나주 하면 으레 ‘재즈의 고향’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루이 암스트롱을 연상하게 된다. 멕시코만과 미시시피강, 어렸을 적에 누구라도 읽었을 톰 소여의 모험의 무대…한마디로 루이지애나는 낭만과 고전이 어우러지는 남부 문화의 본고장으로 받아들여 진다.
루이지애나의 면적은134,382 km2 ,남한의 1.3배쯤 되는 크기로 인구 450만여명의 평범한 주다 그러나 미국 건국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루이지애나는 전혀 다른 어휘로 다가온다. 루이지애나는 오늘의 미국을 존재케 한, 개척과 확장의 거친 ‘프런티어’ 였다. 미국 ‘건국 신화’에서 으뜸가는 역할을 했던 곳 중의 하나로 꼽히는 선구자 같은 주다. 루이지애나는 일찍이 부터 프랑스의 발길이 닿은 곳이었다.
17세기 말엽, 프랑스계 탐사대가 미시시피강 하류를 탐험한 뒤 프랑스령으로 못을 박았다. 이후에 소유권이 스페인에게 넘어갔다가 1800년에 다시 프랑스에 반환이 됐고, 1803년 미국이 매입하면서 미국 영토가 됐다.
미국이 사들인 루이지애나 지역은 이후 준주라는 과도기를 거쳐 여러 주로 분할된다. 미주리, 오클라호마, 네브라스카, 몬태나 등 지금의 중남북부 10여개 주가 다 루이지애나 준주에서 분할된 ‘자녀 주’들이다. 지금의 루이지애나도 이웃 주들 과 같은 경로를 거쳐 1812년 미합중국의 18번째 주가 됐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루이지애나는 미연방의 일원이 되던 해에 미영전쟁에 휩쓸리게 됐다. 주도(州都) 뉴올리언스는 미국군과 영국군이 맞부딪치는 주요 전장(戰場)이 되고 말았다.
미영전쟁의 종식으로 안정을 찾게되면서 루이지애나의 번성이 본격화됐다. 목화와 사탕수수가 대규모 플랜테이션에 재배됐다.일찍이부터 유입된 노예들을 쓰는 탓에 ‘인건비’는 제로나 다름없었다. 농장주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특히 뉴올리언스는 미국 최대의 교역로인 미시시피강 하구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물산의 집합지이자 물류의 최고 중심지였다. 루이지애나는 당시 합중국내에서 가장 흥청거리는 부유주(富裕州)로 부상했다.
그러나 남북전쟁은 번영을 구가하던 루이지애나에 큰 타격을 입혔다. 남부 ‘원조’의 일원으로 노예제를 옹호하던 루이지애나는 당연히 연방을 탈퇴, 남군의 일원이 됐다. 하지만 루이지애나는 관내 주요 전투에서 북군에 잇달아 패했다. 이 과정에서 사상자도 많았고 무엇보다 주요 시설 파괴가 엄청났다. 나아가 전쟁 종식과 함께 강제로 시행된 노예 해방으로 인해 대규모 농장이 주축이 됐던 주 농업 기반도 큰 타격을 입었다.
침체를 면치 못하던 루이지애나는 20세기 초 막대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 발견으로 부활의 전기를 맞았다. 일찍이부터 성했던 조선과 해운업도 궤도를 탔고, 특히 석유 화학제품의 주요 생산기지로 부상하면서 공장과 근로자 수가 급증했다.
루이지애나의 석유나 천연가스는 내륙 보다 연안에서 더 많이 생산된다. 걸프만에 연해있는 대륙붕은 최대의 원유 생산지이고, 해안을 따라서 미국 최대 규모의 정유시설들이 줄 지어 자리잡고 있다.
루이지애나는 위치 그대로 남부의 본산이다. 루이지애나는 흔히 남부에 있는 주들이 그러하듯이 보수 성향이 강한 이른바 ‘레드’주다. 이에따라 1960년대 후반기 까지 인종차별적인 각종 제도와 관행들이 남아있던 곳이었다. 루이지애나의 정치판도는 공화당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이래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앞선 경우가 한번도 없었다. 주지사와 연방상원의원 등도 공화당 일색으로 포진하고 있다. 연방하원도 6석 중 공화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편이다. 주의회 구성도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루이지애나는 스페인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곳이다. 당연히 언어, 문화, 음식 등에 이런 과거의 유산이 깊이 배어 있다. 프랑스계 주민들이 일찍이 부터 정착하던 곳이기에 미국내에서 프랑스 문화가 가장 잘 보존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루이지애나는 주법도 미국내 50개주 가운데 유일하게 영미법이 아닌 대륙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도량형도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관행적으로 미터법을 쓰기도 한다. 지방행정의 단위도 미국내 여느 주가 카운티인 것과는 달리 패리시(Parish)라는 표기를 쓰고 있다. 물론 개념은 카운티와 다름이 없다.
루이지애나에서 나는 작물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사탕수수다. 주 경작면적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의 주산물이다. 이밖에 고구마 등도 주산지 역할을 하고 있다. 따뜻한 걸프만에 연해 있는 탓에 해산물도 풍부하다. 새우와 게 등은 미국 전역의 내지로 공급될 만큼 풍부한 생산량을 자랑한다.
<뉴올리언스>
루이지애나 최대 도시인 뉴올리언스는 남부 최대의 상공업, 금융 중심지다. 식민지 이전의 개척 시대부터 남부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이에따라 유럽 제국들의 식민지 각축전에서, 그리고 미국이 독립국으로 영토를 확보해 나가는 과정에서 최고의 전략 요충지 역할을 했다.
뉴올리언스는 여전히 남부의 간판 도시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다소 쇠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뉴올리언스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우려는 침수(浸水)와 침강(沈降)문제다. 한마디로 물과 인간이 싸우고 있는 격전의 현장인 것이다. 지난 2005년 8월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덮쳤을 때 뉴올리언스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시내의 80% 가량이 평균 6m 깊이의 물에 잠기고 사망자만 1000명 이상을 기록했다.
뉴올리언스가 이처럼 수중 도시가 된 이유는 구조적인 취약점 때문이다. 수면을 제외한 육지 면적이 서울시의 3분의 2쯤 되는 뉴올리언스는 북쪽에 멕시코만의 일부인 폰차트레인호(Lake Pontchartrain)와 시내를 관통하는 미시시피강 사이에 위치해 있다. 호수와 강은 자연적으로는 맞닿지 않지만 시내에 뚫려 있는 운하로 연결이 돼있다.
문제는 이렇게 물 병풍에 둘러 쌓인 것 같은 뉴올리언스 시내의 70% 가량이 해수면 보다 낮다는 점이다. 그 평균치가-0.5m 정도이며 더 낮은 곳은-3m안팎이나 되는 곳도 있다. 이에 따라 침수를 막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제방이 축조돼 있다.
미시시피강쪽은 6m 이상, 호수 쪽은 4.5m 이상 높이의 제방이 합쳐서 200km 정도 된다.
그러나 카트리나 같은 허리케인이 엄청난 물폭탄을 쏟아 부을 경우 중간을 관통하는 운하를 통해 물이 밀려들어 오게 돼있다. 시내 자체가 웅덩이처럼 움푹 파인 것 같은 구조이기에 일단 물이 들어오면 배수가 안되는 것이다. 게다가 뉴올리언스 시내 지반이 연약한 늪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침강을 피하기 어렵다.
여기에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 상승도 영향을 미치면서 뉴올리언스 전체가 서서히 물에 잠겨가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사태는 하루 아침에 일어날 일은 아니다. 하지만 2003년 시행된 지질학 조사결과 현재 추세로 나갈 경우 2100년쯤에는 뉴올리언스 전체가 해수면 보다 2.5m에서 4m 가량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냥 방치하면 뉴올리언스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전등화(雨前燈火)’격의 숙명을 안고 있는 뉴올리언스 지만 그러나 지금은 여전히 남부의 최대 도시 가운데 하나, 그리고 무역량에 있어 2-3위를 다투는 미국의 대표적인 해상 무역항인 것은 틀림없다.
또 ‘아메리카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언어나 문화에 있어 프랑스 영향이 많이 남아있는 이방지대이기도 하다. 실제로 뉴올리언스 올드 타운에는 17,8세기 프랑스풍의 주택, 상가들이 즐비하게 남아있다. 특히 프렌치 쿼터(French Quarter)와 버번 스트릿(Bourbon Street) 등은 서울의 인사동 같은 전형적인 ‘옛날 거리’여서 외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루이지애나는 또 일찍이 노예 무역의 중심지였던 관계로 흑인 노예 후손들이 많아 이 지역 인구 가운데 흑인의 비율은 30%대를 웃돌고 있다 크레욜과 카준이라고 불리워지는 흑인-프랑스 문화의 혼합은 독특한 예술과 음악, 컬처를 낳았다. 그 결과 유명한 재즈 음악, 그리고 루이 암스트롱이라는 거장을 등장시켰다. 특히 재즈 음악은 아프리카와 프랑스, 스페인 문화가 합쳐 만들어진 멀티 컬쳐의 상징물로 여겨진다.
매년 3월에 뉴올리언스에서 개최되는 마드리 그라(Mardi Gras) 축제는 루이지애나의 문화적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몇 년 전 코비드가 만연했을 때 이 축제가 확산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올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참여, 즐기는 최고의 페스티벌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