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실험했던 '마술 공간' 같은 대학
- 김선영 기자
- 3일 전
- 5분 분량

지식 습득을 넘어 체득하는 교육 실천
대학 '간판', AI, 성적 사회에 적응 못해
매사추세츠 앰허스트에 있는 자그만 인문대학이 문을 닫을 예정인데 교육계에서는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다른 대학과 달리 혁신을 실험하면서 완전한 성과를 맺기 전에 문을 닫기 때문이다. 햄프셔 칼리지는 1970년 첫 신입생을 맞이해 학생 개개인의 관심사와 동기를 충족시키고, 다양한 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학습과 교수와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하는 새로운 형태의 인문학 교육을 제공했다.
학생 수 감소, 장기간 누적된 부채 부담, 그리고 부지 개발 지연을 이유로 2026년 12월 폐교를 결정했다. 현재 햄프셔 칼리지에는 625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며, 이는 2000년대 초반 학생 수의 절반 수준이다. 개교 이래 56년 동안 햄프셔 칼리지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학습을 추구하고 어느 대학과도 다르고, 누구와도 다른 대학 경험을 갈망했던 수많은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학교가 되었다. 학교 부지는 지금도 그런 약속을 지키고 있다.
최근 입학한 학생들은 등록금을 환불받는다. 졸업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재학생은 졸업이 가능하다. 그 외 재학생들은 매사추세츠주 내 5개 칼리지 컨소시엄에 속한 대학으로 편입할 수 있다. 이 컨소시엄 참여 대학 학생들은 다른 캠퍼스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이 대학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라는 뜻의 "Non Satis Scire"라는 교훈에 걸맞은 교육을 제공했다. 이를테면, 졸업 프로젝트로 졸업 프로젝트로 가상의 국가를 창조하고, 인류학자, 철학자, 예술가의 지도 아래 그 나라의 역사와 지리, 심지어 음식과 민속까지 설계했다.
다른 어느 대학도 이런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특별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특별한 곳이라는 목소리가 졸업 동문과 인근 대학 교수들에게서 나온다. 햄프셔 칼리지의 폐교는 고등 교육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통합 현상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이런 통합 속에서 재정적으로 여유로운 대학, 그리고 전통적이고 직업 중심적인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대학들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햄프셔처럼 기금 규모가 작은 수십 개의 소규모 대학들은 이런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하고, 독특하며, 때로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햄프셔 칼리지의 학부 경험을 찾는 학생들은 이제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2025년에 학생 300명을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실제로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학생 수를 기록했다.
실험 인문대학의 성장과 몰락
1965년에 설립된 햄프셔 칼리지는 획일적인 학습 모델을 버리고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학교라고 자칭했다. 전통적인 필수 이수 과목이 없으며 학생들이 스스로 설계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장려했다. 햄프셔 칼리지는 이런 실험적인 교육 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뉴잉글랜드 지역의 또 다른 실험적인 대학의 하나다.
버몬트 주의 그린 마운틴 칼리지, 말보로 칼리지, 고다드 칼리지는 각각 2019년, 2020년, 2024년에 폐교했다. 이 대학들은 고등 교육계에서 널리 알려진 이름은 아니었지만, 실험적인 교육을 중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했다. 이런 대학들은 학생들이 독립적인 연구를 수행하도록 장려했고, 일반적인 학과 체계가 없었으며, 교수진의 개인 연구 활동을 경시했다.
성 넘치고 열정적인 학생들이 이런 대학에 모여들었는데, 이들 중 전통적인 고등학교 환경에서 자란 상당수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대학에서의 실험 교육의 기원은 20세기 초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에게서 찾을 수 있다. 듀이는 초등 및 중등 교육에 중점을 뒀지만, 1899년에 “학교와 사회: 세 편의 강연"이라는 책을 저술했고, 이 책은 햄프셔 칼리지 같은 학교들의 지침서가 되었다. 듀이는 기존의 교육 모델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주장했고 학생들이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이어야 한다며, 두려움이 아니라 흥미를 통해 동기를 부여해야 하고, 경쟁이 아니라 협력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원칙들은 미국에서 실험 교육의 초기 움직임을 촉발했다.
1917년, 학생 자치와 실습 위주의 교육을 중시하는 딥 스프링스 칼리지(Deep Springs College)가 캘리포니아의 한 목장에 문을 열었다. 2년제 학교인 이 대학에는 한 번에 24명에서 30명의 학부생이 재학했다. 학생들은 교수진 채용과 신입생 선발을 포함한 학교 운영에 참여했다. 1921년, 70년 전에 개교한 오하이오주의 사립 대학인 앤티오크 칼리지(Antioch College)는 실습을 통한 학습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개편했다. 이 대학은 미국 최초로 수업과 학교 밖에서의 직업 체험을 결합한 산학협동 프로그램을 도입한 인문대학이 되었다.
1926년에 개교한 뉴욕의 인문대학인 사라 로렌스 칼리지와 1932년에 버몬트에 개교한 소규모 대학인 베닝턴 칼리지도 곧이어 실험 교육을 도입한 초기 대학 대열에 합류했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에 걸쳐 워싱턴 주 에버그린 주립 칼리지를 비롯한 수십 개의 실험대학이 설립되었다. 이런 대학들은 고등교육을 혁신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 대학들의 교육 방식에 다양성을 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어떤 의미에서 실험대학들은 1960년대의 정신을 반영했다. 학생들을 전통적인 교육 경로에서 벗어나게 하고, 대학 운영 방식에 대한 발언권을 부여하고자 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대한 더 큰 권한을 요구하면서 때로는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성기 시절에도 실험대학들은 주류 대학들만큼 재정적으로 풍족하거나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햄프셔 칼리지는 설립 당시 앰허스트 칼리지, 스미스 칼리지, 마운트 홀리오크 칼리지, 매사추세츠 대학과 함께 5개 대학 컨소시엄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이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햄프셔 칼리지를 구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햄프셔 칼리지를 비롯한 고등 교육 기관들이 직면한 과제 중 하나는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대학 학위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졸업 후 바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이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없다면 더욱 그렇다. 2025~26학년도 햄프셔 칼리지 학생들의 등록금과 기숙사비는 72,000달러가 넘는다. 학교 측에 따르면 학생의 99%가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시험과 성적이 없는 실험적 대학
햄프셔 칼리지의 폐교는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과 막대한 사립 기부금으로 풍족한 자원을 보유한 대학들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고등 교육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런 대학들은 일반적으로 더 전통적이고 안전한 교육을 제공하며, 부유한 가정의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다.
햄프셔 칼리지는 기존의 틀을 깨는 비전통적 교육 방식을 고수해 왔기에, 그 실패는 오히려 다른 대학들이 취업에 대한 불안감이 큰 학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더욱 적극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도록 부추길 수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햄프셔 칼리지 졸업 동문이 모교의 폐교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햄프셔 칼리지를 비롯한 실험적인 대학들이 오늘날 고등 교육 환경에서 예외로 남을 수 없었던 이유를 잘 보여준다.
그는 햄프셔 칼리지가 고등 교육이 거래 중심적으로 변질된 시대에 혁신적인 교육에 헌신했다며, 일부 사람들에게 대학 교육은 루이비통 핸드백과 같은 겉으로 보이는 치장 수단이었지만 햄프셔 칼리지는 그런 곳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햄프셔 칼리지는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 전망 악화와 더불어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위기, 특히 인문학 및 교양학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인공지능(AI)의 등장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심각한 문제들로 인해 학생 등록율이 급감하는 상황에 직면한 최초의 교육기관은 아니다.
2008년에서 2023년 사이에 약 300개의 대학이 문을 닫았다. 규모와 상관없이 사립과 공립 대학에서 수십 명의 교수진이 해고되고 학과가 축소되거나 통합되었다. 심지어 가장 유서 깊은 대학들조차 이런 위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대학을 적으로 규정한 트럼프 행정부는 전례 없는 대학 탄압 캠페인을 벌여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졸업생들은 햄프셔 칼리지를 "마법 같은 곳"이라고 칭하며 그 곳에서의 시간을 인생을 변화시킨 소중한 경험으로 회상했다.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학교의 교훈처럼, 햄프셔에서의 경험은 강의실을 훨씬 넘어섰다. 햄프셔는 사회적 의식을 함양하고 옹호 지향적인 교육을 장려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진보적인 대학이었고, 모든 학생에게 지역사회 봉사 활동을 의무화한 최초의 대학 중 하나였다. 햄프셔 칼리지는 포용적이고 비판적 사고를 중시하며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교육기관으로, 보수 진영에서 오랫동안 이른바 "오우키즘(wokeism: 깨어 있음)"이라고 비난받아 온 바로 그런 곳이다.
성적을 알파벳이나 숫자로 매기거나 시험을 보지 않는다고 '게으른' 학교는 아니다. 상사나 동료와 마주 앉아 자신의 업무를 평가받는 성과 평가를 받았을 때 다들 놀라지만 이곳 졸업생들은 매우 익숙하다. 18살 때부터 그런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는 학교가 문을 닫고, 학생들은 명확한 진로가 없고, 빚더미에 앉아 있고, 교수들은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고, 노동자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깨어 있는 교육 논쟁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번창하는 '영혼 없는' 교육
인공지능(AI)에 대한 비판, 혹은 기술 옹호자들이 ‘비관론’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여러 분야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이미 많은 학생들이 읽고 분석하고, 데이터를 종합하는 등 온갖 능력을 상실했다고 인문학 교수들은 지적했다.
AI 기술을 서둘러 도입하는 대학들이 스스로 뇌수술을 하는 격이다. 일부 대학들은 모든 신입생에게 생성형 AI 수업을 필수로 이수하도록 하고, 스스로를 최초의 “AI 친화적인” 대학으로 내세우며 모든 전공 분야에 AI를 접목시키려고 한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이고 대학이 살아남아야 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 결과다. 그러나 대학들의 이런 선택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문학 교수들은 이런 도구들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바라는 교육적 목표를 저해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우려한다. 이것이 바로 많은 인문학 교수들이 미래를 우려하는 핵심이다.
다른 분야에서는 최첨단 도구가 될 수 있는 기술이 인문학 분야에서는 오히려 종말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팔란티어의 공동 창립자이자 CEO인 알렉스 카프는 AI가 인문학 관련 일자리를 파괴할 것이라며 이런 불안감을 더욱 부추겼다. 반면, 문학 전공자 출신인 앤트로픽의 CEO 겸 공동 창립자인 다니엘라 아모데이는 “인문학 공부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이라는 정반대의 주장을 펼쳤다.
최근 여러 기술 및 금융 기업들이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 능력을 높이 평가해 인문학 전공자를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일부 대학의 등록 데이터는 오랫동안 침체되어 온 인문학이 AI 시대에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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