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동안 연방 정부가 시행한 퇴거 (eviction) 모라토리엄이 종료된 뒤로 렌트비 미납에 따른 강제 퇴거가 끊이지 않고 있다. 버지니아 빈곤 법률 센터(VPLC)에 따르면 버지니아는 8월에만 1만 6천 건이 넘는 퇴거 재판이 시행됐다.
게다가 지난 5월에는 코로나19로 경제적 타격을 입은 세입자를 대상으로 운영되던 렌트비 지원 프로그램(RRP)의 신규 신청 접수를 중단됐으며, 글렌 영킨 주지사는 추가적인 세입자 보조 정책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뉴욕 역시 자체적으로 시행하던 퇴거 제한 조치를 올해 1월부터 중단한 상태다.
과연 버지니아와 뉴욕에서 퇴거는 어떻게 진행되고, 집주인과 세입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렌트비 못 내면 바로 퇴거?
퇴거 절차는 세입자가 정해진 날짜까지 렌트비를 내지 않으면 집주인이 미납 통지서를 송달하는 것으로 개시된다.
뉴욕은 납부일로부터 닷새 후부터, 버지니아는 바로 다음 날부터 이를 보낼 수 있으며, 그 뒤에는 동일하게 2주의 유예 기간을 거치게 된다. 맥클린에서 활동하는 김원근 변호사는 “상대방이 서류를 받은 날로부터 14일이 지나면 비로소 퇴거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유예 기간 동안 렌트비를 완납하면 퇴거는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2주가 지나면 집주인은 법원에 퇴거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그러면 법원은 먼저 중재를 통한 합의를 제안한다.
페어팩스의 허진 변호사는 “소송을 할 수 있지만 중재를 받아 서로 합의하도록 권고한다”며 “무조건 쫓아내겠다고 몇 개월 동안 돈도 못 받으면서 다투는 게 더 힘들 수 있다고 집주인에게 조언해주곤 한다”고 말했다.
다만 “솔직히 30% 정도 밖에 합의하지 않고 나머지는 소송으로 간다”며 “왜냐면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온 사람은 이미 대화를 해볼 만큼 한 다음에 마지막 옵션으로 왔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중재를 통한 합의가 불발되면 결국 공판일이 잡히고 양측은 법정에서 만나야 한다.우여곡절 끝에 재판장에 가면 판사는 집주인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 렌트비 미납은 명백히 계약 위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입자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이 없는 건 아닌데, 바로 서류를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다.
서류에 허점 있을 수도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세입자에 대한 보호가 강화됐다고 입을 모았다.
김원근 변호사는 “예전에는 세입자가 힘이 없어 법적으로 대응할 생각도 못 하고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이제는 집주인이 힘들어졌다”고 지적했다.
허진 변호사도 “세입자가 법적으로 계약을 위반했으니 충분히 쫓아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세입자가 여러 방법으로 방어할 수 있어서 많은 집주인이 놀라고 실망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집주인이 퇴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그마한 절차상 하자라도 범했다면 이를 근거로 재판에서 이길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미납 통지서다.
김원근 변호사는 “통지서는 정부 보조금을 받는 방법을 안내해야 하며 집주인이 필요한 협조를 해주겠다는 내용이 들어있어야 한다”며 “충분히 자세히 쓰지 않았다고 시비를 걸면 절차가 길어지거나 쫓아내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허진 변호사도 “법원에서 까다롭게 굴면 ‘이게 빠졌네’ ‘편집할 게 있네” 하면서 일정을 딜레이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잘 확인해야 하는 또 다른 서류는 렌트비 장부다. 뉴욕이든 버지니아든 세입자가 돈을 냈다고 주장하는 등 사실관계를 부정할 때 집주인 측이 반박할 증거를 내놓지 못하면 재판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
김원근 변호사는 “세입자가 언제 돈을 냈고 얼마나 냈는지, 연체료는 얼마인지 장부에 잘 적어야 한다”며 “기록이 정확하지 않으면 판사가 퇴거 명령에 서명해주지 않는다”고 당부했다. 따라서 모든 서류를 스캔해두고 구글 드라이브, 원드라이브 등 다양한 장소에 백업해 저장해놓는 게 좋다.
집주인이 통지서와 장부를 모두 정확하게 작성했다면 세입자가 퇴거를 피하고자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다.
허진 변호사는 “만약에 집주인이 3만 달러를 청구했으면 1만 달러만 내겠다고 싸울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집주인이 잘못한 게 없고 합의도 안 되면 할 수 있는 일은 시간 끄는 것뿐”이라며 “80% 가량은 집주인이 승소한다”고 털어놨다.
물어내야 하는 돈의 액수를 줄이고, 재판 기일을 늦게 잡는 등의 방식으로 퇴거 날짜를 지연시키는 정도가 최선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퇴거는 언제까지 해야 할까.
얼마나 걸리나?
퇴거 소송에 걸리는 시간은 개별 사안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수개월이 걸린다. 뉴욕은 심하면 1년이 넘을 수도 있다고 부동산 관리 사이트 도어룹은 소개했다.
허진 변호사는 “강제 퇴거는 처음부터 끝까지 평균 3개월이 소요될 수 있다”며 “절차가 오래 걸리고 만일 항소하면 더 길어진다”고 밝혔다.
다만 “항소하려면 법원이 집주인에게 물어내라고 판결한 만큼 공탁금을 내야 해서 항소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간다고 해도 문제는 쉽지 않다.
김원근 변호사는 “재판 기일 전까지 세입자가 돈을 내면 쫓아내지 못하는 등 집주인 입장에서 절차가 많이 까다로워졌다”고 지적했다.
허진 변호사는 “재판 기일이 돼도 첫 공판은 다툴 부분이 있는지만 확인하고, 있다고 하면 다음 기일을 잡는다”며 “그 날짜가 일주일에서 2~3주 뒤로 잡힐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판결이 나오면 보안관실에 가야 하고, 보안관은 2주 정도 후로 퇴거 날짜를 정해서 세입자에게 통지하고, 세입자가 그때까지 안 나가면 열쇠공을 불러서 강제 집행하는데 열쇠공이 못 오면 또 취소된다”며 “열쇠공을 불러 사람을 내보내고 자물쇠를 바꾸면 퇴거가 완료된다”고 설명했다.
당연하지만 집주인이 직접 세입자를 끌어내선 안 되고, 반드시 보안관에게 맡겨야 한다. 하지만 이 다음에도 남은 쟁점이 있으니, 바로 보증금 상환이다.
집주인은 렌트비를 내지 않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고 싶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러려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김원근 변호사는 “집에 흠집이 나서 공사하는 사람을 불렀고, 무슨 재료를 샀다는 등의 것을 전부 세세하게 기록해서 보증금을 어떻게 썼는지 전부 보여줘야 한다”며 “퇴거 후 14일 이내에 보증금을 돌려주거나 소비 내역을 보여주지 못하면 소송을 당하고 보증금은 물론 상대방의 변호사비까지 물어내야 한다”고 경고했다.
즉 퇴거가 집행되면 모든 게 끝난 거라고 착각하지 말고 세입자도 집주인도 반드시 보증금을 확인해야 한다.
보증금 문제까지 말끔히 처리하고 나면 바야흐로 모든 절차가 완전히 마무리된다.
결론
코로나19 이후 법이 세입자에게 우호적인 방향으로 많이 바뀐 상태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미납 통지서나 렌트비 납부 기록을 정확하게 작성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재판에서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서류를 정확하게 준비해서 소송에 들어가는 경우 대부분 집주인이 승소한다.
법정 바깥에서 상호 합의로 소가 취하되기도 하지만 극히 드문 경우다. 다만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는 데는 수개월에서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려 집주인도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소송이 끝난 후에 보안관실을 통한 퇴거 집행과 보증금 상환도 남아있다.
따라서 가장 좋은 건 퇴거를 할 필요가 없도록 이전부터 세입자와 집주인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금리 인상으로 모기지 부담이 올라간 만큼 집주인들에게 퇴거는 절실한 마지막 수단이다. 반면 집값과 렌트비가 치솟은 현재의 부동산 상황을 생각하면 세입자들에게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 양측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퇴거를 할 필요가 없도록 경기가 호전되고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길 바라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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