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교차로' 인디애나
- 김용일 기자
- 4월 11일
- 3분 분량

시카고를 출발해 남쪽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보면 지나게 되는 곳이 있다. 다름 아닌 망망대해 같은 대평원이다. 서너 시간을 달려도 주변 풍경은 엇비슷하다. 지평선이 맞닿은 곳 까지 밀밭, 옥수수 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구릉은 커녕 소 잔등 만한 언덕 조차도 없는 완벽한 평야 지대, 중부 인디애나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인디애나는 ‘미국의 교차로’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미대륙의 거의 중간에 위치하기에 어디를 가든 거치게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남한 땅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인디애나는 주변 주들처럼 17세기 중반 프랑스 탐험자들이 오대호 일대를 탐사하다가 첫 발을 디디면서 프랑스령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이 일대 역시 인디언들이 원주민으로서 먼저 자리잡고 있었다. 인디애나 라는 이름 자체가 ‘인디언의 땅’이라는 뜻이었다
인디애나는 중부의 주변주들과 마찬가지로 1763년 인디언-프렌치 전쟁 끝에 영국으로 소유권이 넘어갔고 그로부터 딱 20년 뒤에는 다시 미국 영토로 바뀌었다. 그러나 1800년 초에도 인구수가 고작 2천여명에 불과할 정도로 외면을 받던 곳이었다.
인디애나는 미국 땅이 되면서 비로서 개발과 정착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중부 일원의 다른 주들이 직면했던 것과 같은, 인디언들과 땅 지배권을 두고 많은 충돌을 겪어야 했다. 정착민들은 미국 영토로 여기고 이주해 오지만, 원주민인 인디언들 역시 자신들이 여전히 땅 주인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일대 유력 인디언족의 하나인 쇼니족의 주장 테쿰세를 비롯, 여러 인디언 부족들이 미국의 팽창에 맞서 크고 작은 전투를 벌이며 저항했다. 인디언들은 특히 영국군으로 부터 총과 탄약을 구입, 지원 받거나 아예 영국군 측에 가담하기도 했다. 이같은 움직임들은 결국 1812년 미영전쟁의 단초가 됐다.
그러나 독립전쟁에 이어 이 2차 전에서도 패한 뒤 영국은 인디언의 ‘배후’ 역할에서 손을 뗐고 이 지역 인디언들은 다시금 미시시피강 넘어 서쪽으로 밀려났다.
1816년 인디애나는 19번째 주로 합중국에 합류했다. 인디언 문제도 해소되고 정착민 인구도 6만명을 넘기는 등 독립 주로서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뒤였다. 곧 이어 이리운하와 미시간 운하 등이 개통되자 인디애나는 급속한 성장세를 탔다. 미국내 생산량이 다섯번 째 안으로 꼽히는 옥수수, 콩, 밀 등이 대평원의 농장에서 엄청난 규모로 수확됐다. 역청탄, 철 등의 천연자원 생산도 오대호 연안의 공업화 붐을 타고 급증했다. 인디애나는 지금도 미국내 철강 생산에 있어 선두 주자다. 북미 최대 제철소인 게리 웍스(Gary Works)도 인디애나 북서부에 자리잡고 있다.
인디애나는 이러한 공업, 제조업의 탄탄한 기반 덕에 일리노이, 미시간, 위스컨신 등과 더불어 ‘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일원이 됐다. 주로 오대호 연안의 공업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주들로 구성된 러스트 벨트는, 한 때 최고의 성장기를 구가했으나 이후 미국의 제조업 부문이 위축되면서 쇠퇴를 면치 못하게 됐다. 말 그대로 쇠 먼지가 쌓인 낙후 지역으로 변모된 것이다.
러스트 벨트 지역들이 잘 나갔을 당시에는 노조도 위세가 대단했었다. 그에 따라 정치성향도 민주당이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경제가 힘들어지자 정치 컬러에도 변화가 왔다.
인디애나를 비롯한 러스트 벨트 주들은 대체로 중 저학력의 백인 남성들, 이른바 ‘블루 컬러’ 계층이 주류인데, 경제부진에 따른 이들의 상실감과 불만,불안감을 파고 든 것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었다. 트럼프는 워싱턴 정치권에 대한 거부감이 높은 이들을 일거에 공화당 지지층으로 변모시켰다.
그러지 않아도 인디애나는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강세인 지역이었다. 인디애나는 남북전쟁 당시 ‘자유주’였고 지리적으로도 당연히 북부에 속했지만, 유별나게 보수 층이 두터워 지금도 ‘확실한’ 남부 성향을 보이고 있는 곳이다. 한때는 인종차별을 일삼는 KKK단의 본거지 역할을 한 적도 있었다.
인디애나 출신들은 후저(Hoosier)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후저는 정직한 사람이란 뜻도 있지만 대체로 ‘시골뜨기’ 라는 의미로 통한다. 한국으로 치면 ‘감자바위’와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딴딴한 플래그십 대학들도 여럿 있다. 아이비리그 급의 유명 캐톨릭 사립대인 노틀담 대학을 비롯, 퍼듀 대학, 인디애나 주립대 등이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미국 각 주를 살펴보면 저마다 이런 저런 특색, 자랑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인디애나는 심심하고, 딱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외진 곳 같은 인상을 갖게한다.
이렇게 미국내에서는 ‘촌 동네’로 불리는 인디애나지만 주의 GDP는 2023년 기준4천10억달러로, 전세계 국가와 비교해 볼 때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이집트 등 보다 앞서고 덴마크에 약간 뒤지는 세계 38위에 랭크되고 있다. 미국의 힘이 간단치 않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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